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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d Aug 22. 2024

06. 푸른 대문의 여자

에드워드 호퍼 Eleven A.M.


06. 푸른 대문의 여자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또 의미 없는 하룻밤을 보낸 셈이었다. 여자는 몸의 물기를 닦지도 않은 채 블루밍데일에서 8달러를 주고 산 플랫슈즈를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꽃병이며 쿠션, 컵과 같은 것들을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집안의 모든 물건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가 직접 칠한 푸른색 대문을 제외하고는.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이봐요. 집에 있어? 당신이 이 남자 저 남자 데리고 들락거려서 우리 아파트에 창녀들이 사는 줄 아는 사람이 생겼다고!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 집주인이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문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의 발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들은 여자는 부엌으로 향했다. 전날 마시다 만 레드와인이 담긴 고블렛 잔이 싱크대에 놓여 있었다. 여자는 남은 와인을 들이켜고 비틀비틀 거실로 나왔다. 전날 벗어던진 옷가지와 서랍, 가방 안을 뒤졌지만 담배는 한 개비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 옆에 세워둔 탁자 위에 누군가 휘갈긴 쪽지가 보였다. 지미라는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쪽지를 내버려 둔 채, 여자는 파란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창문을 활짝 열자 햇빛과 함께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1층에서 아이들이 공놀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맞은편 아파트의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았다. 비둘기 똥이 묻어 있는 우중충한 회색 벽을 보자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지 못해 매일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바에서 만난 아무 남자와 집에 와서 잠을 자는 생활이 몇 주째나 반복되고 있었다. 여자는 이 도시에 자신의 집에 와보지 않은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내밀어 창 아래를 내려다보자 나무와 그 곁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머리통이 보였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두려움을 이겨내고 몸을 밀어낸다면 여자의 벌거벗은 몸은 자유낙하 상태가 되어 점점 빠른 속도를 낼 것이고 순식간에 콘크리트 바닥과 맞부딪혀 으깨지고 곤죽이 될 것이었다. 몸의 폭발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여자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자유낙하의 상상을 수없이 해왔으나 지금껏 수행하지 못했다. 그녀가 끝맺지 못한 다른 모든 일들처럼. 오늘은 기필코 해내리라. 여자가 마음을 먹고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맞은편 건물의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빨래를 널고 있었다. 여자는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남자를 보았다.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빨래를 매우 가지런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널고 있었다.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남자가 널던 빨래 중 셔츠 한 장이 팔랑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펄럭이며 천천히 떨어지다가 여자의 창문에 안착했다. 그제서야 남자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잠시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여자에게 셔츠를 걸치라는 듯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는 베란다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자는 셔츠를 집어 들었다. 문득 배가 고팠고 담배가 필요했다. 여자는 셔츠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그것을 입었다. 그리고 속옷과 팬츠를 입은 뒤 열쇠와 돈을 챙겼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 거리로 나갈 것이다. 코너의 슈퍼마켓에 갈 것이다. 그리고 담배와 샌드위치를 살 것이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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