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 희미하게 보이는 말 위의 죽음
14. 메시아 (2)
“연기가…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니 누군가 들어왔다 급히 나간 것 같습니다.”
“아직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샅샅이 뒤져라.”
신관들이 든 촛대 위의 작은 불꽃들은 공기에 밀려 뒤로 누웠고, 그들의 발걸음은 바빠졌다. 혹시라도 고서에 불이 붙을까 신관들은 조심하며 구석을 살피고 있었으나 어디에도 아샤의 흔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관들이 아샤가 있었던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 아샤는 이미 서고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샤는 인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말에게 다가가 올라타기로 유명했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데에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었기에, 오빠들은 그녀를 암살자, 혹은 그림자 아샤라고 부르곤 했다. 아샤는 신관들이 든 촛불의 빛을 피해, 거대한 책장들의 그림자만을 밟아가며 서고 밖으로 조용히 나간 셈이었다.
아샤는 붉은 책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던 작은 글씨를 계속 머릿속에서 되뇌며 걸음을 옮겼다.
‘가네덴이 돌아온 뒤, 바라크의 경계를 맴도는 괴이하고 위험한 먼지 소용돌이가 생겼다. 가까이 갔던자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이에 가네덴의 모든 사람은 바라크에 가는 것을 금지한다. 히즈라엘은 떠나기 전, 대신관에게 신관으로써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전했고, 신관직에서 파면된 채 바라크로 향했다.’
바라크의 경계를 도는 먼지 소용돌이가 무엇인지는 아샤도 잘 알았다. 여섯 살, 처음으로 사막 가까이 다가가 그 경계를 보았던 순간을 아샤는 정확히 기억했다. 아버지는 그녀가 본 것이 모두 꿈이고 환상이라 말했지만, 아샤는 자신이 본 것을 믿었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그것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새하얀 말이었다. 거대한 백마. 그것은 아샤의 집에서 가장 큰 말인 이타카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그리고 말 등 위에는 해골이 있었다. 아샤가 빈번히 보아온 말의 해골과는 다른 모양새의 해골이었다. 아마도 사람의 것이리라. 아샤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샤는 말 위에 있는 해골의 정체와 히즈라엘이 대신관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걷다가 소리를 지르며 멈춰섰다.
“멍청하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눈치도 못 채고 물에 빠지는 거야?”
아샤가 곁을 돌아보자 그녀의 오랜 친구 하딤이 서 있었고 눈 앞에는 가네덴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대하고 맑은 오아시스, 실로암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 다락에서 구르다 왔냐? 옷 꼴이 왜 이래? 성인식 준비 안 하냐?”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아샤는 하딤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소와 달리 코와 귀, 목에 잔뜩 장신구를 달고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탄탄한 가슴팍과 팔뚝, 등 위에는 제 가문의 문양을 멋지게 그려 넣은 모양새였다.
“그러고보니 너… 엄청 꾸몄네?”
아샤의 말에 하딤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성인식때 이 정도는 다 하는 거거든? 아저씨한테 혼나기 싫으면 너도 얼른 집에 가서 준비하는 게 좋을 걸. 너네 집 사람들이 하루 종일 너 당장이라도 결혼식 올릴 만큼 꾸며주려고 애타게 찾고 있던데.”
어느 새 장난기가 가득 묻은 하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샤는 하딤의 무릎을 걷어찼다. 아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하딤이 아픔에 신음하며 무릎을 감싸 쥔 사이, 아샤는 얼굴을 찌푸린 채 집을 향해 달렸다. 그 멍청한 성인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곧 아샤는 달리기를 멈췄다. 그 멍청한 성인식을 위해서는… 대신관이 오지 않던가! 게다가 성인식 저녁이면 아버지도 오빠들도 신이 나서 독주를 진탕 마실 터였다. 무언가 떠오른 것일까, 아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늘 밤이다. 오늘 밤이어야만 한다!
메시아 (3)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