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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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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Sep 30. 2022

아버지의 연락

가족에 대하여

스마트폰을 보고서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느닷없이 아빠의 번호로 전화가 와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엄마에게 가끔씩 전화가 오긴 했지만 아버지에게 연락이 오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 정도로 그것은 드문 것이었다. 잠시 고민을 한 후에 통화버튼을 간신히 눌렀다.


“ 뭐 잘 지내고 있어? 이번 추석에 내려올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어.. 뭐 잘 지내지. 근데 나 표를 예매 안 했어. 다음에 갈게. ”


나는 침착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잘 지내고 있어.” 


아버지는 재빠르게 말한 뒤에 통화를 종료할 준비를 했다. 

“어. 나중에 한번 갈게.”


그러한 템포에 맞추듯이 적절한 말을 찾았다. 마치 길에서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을 우연찮게 만나서 그저 인사하며 스쳐 지나가듯이 빠르게 말을 나누었다. 그렇게 단 일 분가량의 통화가 끝이 났다. 짧은 통화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무적인 무언가를 전달해야 할 때가 아니면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개 전해야 할 무언가는 잘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이미 법적으로 1인 가구에 해당했다. 


지금까지 한두 번 정도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단순히 안부를 물었던 것 같다. 아마도 종종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통화는 서로에게 상당히 어색한 느낌을 주었던 탓에 매우 짧게 끝이 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매번 술에 취해있거나 약간 떨려있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그에게 약간의 용기 내지 침착함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처럼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게 아버지와는 관계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떤 관계는 직접 얼굴을 마주치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과연 언제쯤이면 가능할 수 있지는 잘 몰랐다.


예전부터 부모님의 품에서 얼른 벗어나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집안은 그다지 화목하지 않았고 형편도 어려웠다. 항상 돈에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못했다는 이야기는 대화의 핵심이었다. 아마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떻게 서든 가난에서 벗어나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라 굳게 다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카페에 취직을 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게 되었고 점점 아버지의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은 끊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돈과 관련된 것들 말곤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엄청난 금액은 아니겠지만 몇 천만 원의 대출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아버지는 무덤덤한 태도로 금리가 높은 대출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종종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무덤덤한 가족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유달리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문득 가족과의 관계와 어쩌면 비슷한 이유로 인해 다른 인간관계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별로 생각나는 게 없었다. 어쩌면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게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점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조금씩 맨몸으로 벽돌을 하나씩 나르면서 나만의 성벽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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