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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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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Oct 08. 2022

카페투어

커피를 마신다는 것

언제부턴가 매일 집에서 멀리 위치한 카페로 걸어서 갔다. 한 시간을 걸어서 에베레스트라는 카페에 도착했다. 곧바로 에스프레소를 두 잔을 마셨다. 밑바닥에 있는 설탕까지 전부 핥았다. 그곳은 에스프레소 한 잔에 천오백 원이었는데 맛도 훌륭했다. 오랫동안 다양한 커피를 마셔왔던 나는 커피에 대한 식견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래서 카페를 갈 때에도 상당히 까다롭게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일단 에스프레소를 두 잔 마실까 아니면 크림이 올라간 콘파냐를 마실까. 당장 이것부터 결정하자.”


달달한 설탕과 함께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바닥에 깔린 설탕을 티스푼으로 긁어서 먹었다. 이 집이 에스프레소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는 걸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맛에 대한 식견이랄까 아니면 판단력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느냐와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에스프레소 콘파냐의 크림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에는 따로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 밑에 깔린 에스프레소는 약간 쌉싸름한 맛이 났다. 


오랜만에 통장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을 했다. 퇴사를 한 직후에 가지고 있던 돈에 절반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돈이란 것이 주는 자유를 맘껏 누리고 살지 못했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분명 가난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조차 내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찾는다면 아마도 카페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절반은 맞을 것이다. 거기에는 약간의 자유가 있었다. 카페는 그 동네 사람이 아닌 누군가 들어오더라도 그다지 이질감이 없는 공간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스며들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좋아한다. 그것은 자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하루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내 통장잔고는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을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 할머니가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서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몇 살인지 물어봤다. 열일곱 살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드문드문 대화를 엿들었다.


“참 오래도 살았지요. 지금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그나마 이렇게 살아있어요. 만약에 입맛에 맞는 걸 못 찾았으면 아마 죽었을 거예요.” 


“아휴. 우리 개도 열두 살인데, 열일곱이면 참 고생이 많네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자기 입맛에 맞는 걸맞아야 오래 살 수 있는 거예요.”


나는 강아지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유모차가 반대쪽으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버스가 올 때까지 칠 분가량이 남았기 때문에 그냥 강아지의 뒷모습과 아주머니의 옆모습을 무심히 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대화를 마치고서 일어나서 그냥 지나갔다. 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고서 광화문 근처에 있는 대형 카페로 향했다. 왜냐하면 베이글을 커피와 함께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고층빌딩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좋은 구경거리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만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으니 그것을 보지 않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를 곁들여 베이글을 먹고서 밖으로 나왔다. 정처 없이 걸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일요일이고 어디를 가나 사람이 넘칠 것이며 걷는 것 말곤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지도가 종종 보였는데 나는 그것을 찾았다. 앞으로 조금 더 걷어가면 청계천이 있었다. 그래서 그리로 갔다. 


청계천은 도심 속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청계천에 앉아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고층빌딩을 보고 있자면 뭔가 답답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건너편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노래를 열심히 불러서 꽤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주었다. 문득 서울에 계속 살다 보면 또 거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며, 나름대로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청년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까 조금 뭉클했다. 감정이 촉촉해지는 순간은 아무래도 진심으로 무언가에 빠져있을 때였다. 왠지 모르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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