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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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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Oct 09. 2022

도난

담배를 피운 이유

언젠가 문장을 쓴다기보다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는 소설가의 말을 따라서 음악을 틀어놓고서 글을 적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실제로 한다는 것이 영 쉽지가 않았다. 막상 글을 쓰고자 키보드에 손을 얹어도 아무런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이러다간 갑작스럽게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은 채로 다양한 음악을 틀었고 꾸준하게 키보드에 몸을 맡겼다. 리듬을 타는 듯이 몸을 움직이면서 문장을 적어나갔다. 키보드를 피아노 건반으로 삼아서 이응을 적었다가 지웠다가 기역을 적었다가 키보드를 문질문질 만졌다가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이러한 건반 놀이를 하면서 무엇인지 모를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음악을 연주한다는 느낌과 비슷했다.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면서 문장을 뱉어내는 것이었다. 괜찮은 문장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잠깐 동안 재밌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집 아니면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쓰면서 견뎌냈다. 그것은 분명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다른 동네에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동네를 산책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내가 사는 집은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현관문은 열쇠로만 잠글 수 있었다. 집주인은 만약에 본인이 원한다면 도어록으로 교체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돈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꾸지 않았다. 열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열쇠가 약간 뻑뻑하게 잘 들어가지 않더니 이제는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었다. 


나는 당장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매번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언제부턴가 인터넷에 의존하게 되었고 해결이 안 되면 그냥 포기해버렸던 것이다. 아직까지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살았다. 왜냐하면 옛날 집에 강도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 수리를 알아보는 것보다는 평소처럼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그것이 아주 습관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그냥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계속 지냈다. 그리고 역시 누군가 들어온 적은 없었다. 사실 집 안에 귀중품이라고 할만한 것은 거의 없었지만 노트북은 절대 잃어버려선 안되었다.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노트북을 전용 가방에 넣어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아주 가끔씩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 안에 놔두었다. 도둑에 대해 한동안 걱정이 한 적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별 탈 없이 지내왔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평소처럼 현관문을 열었다. 실내는 어두컴컴했지만 직감적으로 아침과는 무언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섬뜩한 것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누군가 들어왔던 것일까. 그걸로 인해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목이 바싹 말라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게 신발을 벗었고 천천히 손을 뻗어서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그가 생활하는 방은 왼쪽 편에 있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곳은 자신만의 방이었다. 그런데 방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 자신은 방문을 열어 놓고 나갔다. 


어젯밤에 깜빡하고 노트북을 충전시키지 않았기에 오늘 외출하기 직전에 충전을 시켜놓고서 괜히 그것을 안 보이게 침대 이불 사이에 넣어 두었다. 물론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에 누군가 들어오게 되면 이 충전기는 눈에 보일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중요한 것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노트북을 찾았다. 그런데 침대에 있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누군가 노트북을 가져간 것이다. 한순간에 절망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과연 누가 내 방에 들어와 노트북을 가져간단 말인가. 과연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연찮게 현관문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일까. 어찌 되었든 그자는 조용히 노트북만 가지고 방문을 닫고 나간 것 같았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아주 자연스럽게 슬림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문득 세상이 점점 나의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젠장. 이제 당장 무엇으로 작업을 하고 지금껏 적어왔던 것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오랜만에 담배를 피웠더니 역시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헛기침을 해댔다. 담배는 맛이 씁쓸했다. 그래도 씁쓸한 기분만은 한결 나아졌다. 물론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사라진 노트북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한 가지 있긴 했다. 그것은 바로 흡연을 하다 보면 종종 죽음에 관한 생각이 들면서 노트북 따위는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러한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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