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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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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Oct 11. 2022

내적 갈등

달과 자유인

나는 난간에 서서 잠시 동안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았다. 달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달을 계속 보고 싶었다. 달과 교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왜냐하면 현재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멀리 있지만 내가 봤을 때 가장 밝게 빛을 내는 존재이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내가 유일하게 항상 변함없이 바라보는 존재였다. 달을 보고 있으면 종종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도대체 나는 뭐하는 인간인가.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달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별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이 조금씩 따가워지면서 이상하게도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던 것인지 한기가 느껴지고 혹시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담배를 피웠더니 역시나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눈을 감은 채로 양치질을 하고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입고 있었던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곧장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화장실이 너무 추웠기 때문에 얼른 뜨거운 물을 온몸에 젖셨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리고 전기장판을 틀어놓은 침대에 누워서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시간을 보내고 나니 불안정했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오늘 겪은 일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노트북이 없어졌다고 해서 내 인생도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은 뼈아픈 고통이었지만 노트북은 어떻게든 새로 구매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자신이 무언가 분명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과 슬픔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느껴졌는데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말을 할 뿐이었다. 사라진 노트북. 달과 눈물 그리고 뜨거운 샤워. 갑자기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질려버린 직장생활일 수도 있고, 난생처음 소설을 완성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마치 방 안의 어딘가에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가 간신히 다시 봉합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은 담배를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어느새 통장잔고는 착실하게 점점 바닥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취직을 하지 못했다. 취업을 하려고 하면 내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재취업을 하는 데에 필요한 서류상의 준비를 마쳤고 바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면접에서 자신이 그다지 적극적으로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서 취업은 매번 실패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인사담당자는 “혹시 다른 지점으로 갑자기 인사이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데 괜찮은가.”라고 질문했다.
나는 그 질문에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이전 직장에서 강제적인 인사이동으로 인해서 고생을 했었고 결국 원래 지점으로 복귀한 적이 있었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면접에서는 “혹시 회식을 자주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시 술은 좋아하느냐.” 이러한 질문에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당연히 긍정적인 결과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태도가 언젠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분명히 구직활동을 할 때 열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었고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집주인과 마주칠 때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집주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의 표정에 드러났을 감정을 최대한 들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답답할 때마다 집 밖으로 나와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만약에 아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면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핑계를 대기 위해서 애를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동네에 내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평온한 척을 하면서 걸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상가 앞에서 자유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걱정과 동시에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항상 무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그가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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