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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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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Oct 03. 2022

또 다시 방황

명절

어젯밤에 맥주를 마셨더니 숙취로 인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얼른 몸을 일으키고 버릇처럼 책상에 앉았다.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동안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손에 계속 들고 있다가 평소처럼 드립 커피를 한 잔 내렸다. 뜨거운 커피가 몸속에 들어오면서부터 확실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식을 하기 위해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명절이었으므로 식당들이 영업을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종종 방문했던 가게들의 영업시간을 검색해 보면서 잠깐 시간을 보냈다. 신중한 고심 끝에 길을 나섰다. 막상 가게에 도착해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약간 황당한 상태로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면서 걸었다. 앞으로는 전화를 걸어서 매장이 영업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명절이란 그저 바쁘게 일하는 날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오히려 공휴일과 주말에 일하는 것을 더욱 선호했다. 왜냐하면 쉬는 날에는 돈을 쓰는 것 말곤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연장근무를 해서 돈을 더 받거나 연봉협상을 잘하는 것 말곤 딱히 없었다. 그리고 연봉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달리 특출 난 성과를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보통 그렇듯이 나만의 성과는 없었고 작은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참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성과에 대해서 말할 때면 상대방의 반응이 미지근하거나 마치 욕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으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반대로 누군가 지나치게 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는 그것이 되려 좀 역겨웠다.


정처 없이 한참을 떠돌아다녔다. 문득 따뜻한 카페라테를 한 잔 마시면 당장의 배고픔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뒤돌아 걸었다. 카페 소크라테스에서 따뜻한 라테를 종이컵에 받아서 나와 그것을 마시면서 인근 공원을 향해 걸었다. 상가 앞에는 자유인이 가만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흡연을 보면서 내심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태로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저 못 본체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사실 아까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잠깐 했다. 명절에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아무래도 조금 쓸쓸한 느낌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더욱 의미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이 좀 불쌍하다고 여겨졌다. 


집 근처에 있는 근린공원에 도착했다. 날씨가 맑다 보니 공원으로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돌아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울창한 나무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저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은 빠르게 정화되는 듯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걸었다. 혼자서 걷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문득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하는 망상에 빠졌다. 근린공원에 자리 잡은 아직 고목이 되지 못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실제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잠깐 보았다 해도 곧바로 잊어버릴 것이다. 누군가 저 젊은이에 대해서 잠깐 언급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잠시 뿐일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명절에 혼자서 공원을 산책하는 청년일 뿐이었다.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친오빠의 안부를 묻자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 연인이 생긴 탓인 줄 알았는데 정부 지원을 받아서 자취를 시작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내면서 수시로 지나가고 있었다.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오랜만에 피자를 한 판 먹기로 했다. 명절이다 보니 평소와 달리 피자가 먹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피자집에 들러서 작은 사이즈 한 판을 포장했다. 그리고 너무 허기가 졌기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을 단숨에 해치웠다. 피자가 담겨 있었던 종이박스를 정리하면서 낮에 만났던 자유인이 생각이 났다. 그는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일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거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그리고 또다시 기계음 같은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렸다.


“여기에서 얼른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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