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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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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Sep 30. 2022

방황

커피와 노트북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 하지만 집을 나섰을 때 방향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디로 가든 지하철을 탈 수 있고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섣불리 길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집 주변을 자주 서성거렸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햇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햇살이 매우 좋았다.  매일 가던 카페로 갈까 싶다가도 지겨운 느낌이 들어서 관두었다. 햇빛을 받으면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기분이 우울했기 때문이다. 과연 직장을 그만둔 것이 잘한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 집 근처에 있는 카페 소크라테스에 자주 가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이 동네에서 사랑방처럼 자리를 지켜온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장의 외관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폐쇄적인 느낌이 들어서 방문을 꺼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매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다지 어둡지 않고 꽤 아늑한 느낌이 있었다. 그 후로 자연스럽게 매일 방문하게 되었다. 커피를 주문할 경우에 두 가지 원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적당히 볶은 원두와 조금 더 볶은 원두였다.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었다. 나는 보통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오랫동안 자리에 머물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적었다.


노트북과 사투를 벌인 지 꽤 되었던 터라 나는 피로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몇 달째 이렇게 방구석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떠한 집념에 사로잡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절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적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아니면 그저 나라는 존재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과연 언제까지 이러한 은둔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퍽 걱정이 되었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


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 내가 오래전부터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서 누군가 말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언젠가 그것을 표출해야만 했던 것 같았다. 나의 하루는 커피로 시작해서 글로 끝이 나거나, 글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나는 식이었다. 정처 없이 길을 걷으면서 자신에 대한 상념에 빠지기도 했고,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을 붙잡고 기싸움을 하기도 했다. 눈에 피로감이 가득했지만 그것들을 놓을 순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생각을 가지고 시작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글은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 다소 우울해졌다. 종종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았다. 하루하루 그저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보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잘 대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카페에 앉아있을 때 종종 주변의 여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혹시 나처럼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벼운 인사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없었다. 매번 충실하게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했다. 이런 사내에게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일말의 관심을 보이던 사람도 일부러 방해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주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거기서 일어나는 로맨스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카페 종업원과 손님의 로맨스는 매우 전형적이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읽고 있던 책에서도 자주 그런 상황이 펼쳐졌다. 


평소에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는 남자가 이러한 로맨스를 기대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번듯한 직장도 없이 퇴직금으로 생활을 근근이 유지하는 청년이 무슨 연애란 말인가. 연애를 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나에게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들이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무너지고 평일과 주말의 경계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도 어느새 희미해져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미 집에서 커피를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커피를 잘 마시는 편이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카페인에 중독된 탓일 것이다. 집에서 혼자 커피를 계속 마시고 있다 보면 머리가 이상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부분 혼자만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왔다. 항상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있었다. 통장잔고가 얼마나 줄었는지 상관하지 않은 채로 특이한 커피를 여러 잔 마셨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고 그 정도는 쓸 수 있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코앞에 닥치더라도 뜨거운 커피 몇 잔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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