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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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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Sep 28. 2022

결단

예상치 못한 일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내 기억 속에는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우연히 그들의 여전한 모습들을 보게 될 때면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예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카페에 앉아 있었다. 어디를 가던지 그 동네의 카페에 머물면서 커피를 가운데 두고서 소설을 읽었고 카페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여전한 모습이란 전부 카페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화창한 날씨의 풍부한 햇살, 따뜻한 빛깔의 땅과 그림자, 푸른 나뭇잎들이 살랑이는 풍경,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손, 편안한 스피커, 사장님의 웃음소리, 뜨거운 잔에 담긴 커피에서 올라오는 하얀 증기,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그게 어젯밤 꿈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다. 물론 여행을 통해서 임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또다시 해소되지 않은 공허함과 더 멀리 떠나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물론 여행의 순간들도 즐겁지만 그때 커피를 마시던 기억은 여행의 한 순간일 뿐이었다. 일상 속에서 타인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때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속에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단순히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보다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밀도 높게 보냈던 수많은 모습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이 된 활자에 깊게 몰입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아직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 마셨던 수많은 뜨거운 커피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에게 무언가를 암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감촉을 아직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그 행복감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순간들이 오기만을 간절히 열망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삶이 원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서 쉽게 초조한 상태가 되었다. 그것을 잊기 위해서 더욱 사소한 일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했다. 동료직원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갖고서 남몰래 호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출근길에 항상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담배를 피우거나 아이스크림을 물고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매일 똑같은 복장을 하고서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상가 앞을 서성이고 있는 이 청년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항상 그를 주의 깊게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청년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차림새가 추레하고 얼굴은 많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볼 때마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혹시 잦은 흡연에 몸이 더욱 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청년을 자유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자유인이 다른 외국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흥미롭게 쳐다보면서 출근을 하기 위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가게 주인처럼 보이는 외국인은 화가 난 듯이 단호한 표정으로 뭐라 말하고 있었다. 자유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서 있었다.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잘 들렸다.


“자네 지금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잘 한번 생각해봐. 이게 정말로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아니. 사실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여기에서 얼른 벗어나.” 


나는 이미 눈을 돌린 상태였으므로 상황을 정확히 볼순 없었지만 소리의 근원을 향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외국인은 나와 눈이 마주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를 향해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뇌리에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에는 상당히 적확하면서 위협적인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얼른 벗어나.”


출근과 동시에 바쁘게 설거지를 하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렸다. 잠깐 숨을 돌리는 시간이 났을 때 매장 안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혼자서 노트북을 보면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문득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바 안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커피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빵을 접시에 옮겨 담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나는 자유에 빠져있었다.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직장생활을 이어온 지 오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물론 그것은 내게 비교적 자유로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 곧 서른 살이 될 텐데 돈을 전혀 모으지 못한 것이다. 온전히 내 힘으로 가난한 생활에서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수많은 컵과 접시들을 설거지하고 에스프레소를 내리면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날 내 안에 무언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나는 퇴근하기 직전에 매니저에게 이번 달까지만 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카페는 비교적 이직이 잦은 곳이다 보니 나의 요청은 별 탈 없이 받아들여졌다. 나는 모든 게 너무 쉽다고 느껴져서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스스로 권태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유에 대한 불안과 기쁨 사이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마련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는 당분간 그저 쉴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말을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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