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자유인 0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 Sep 28. 2022

서울생활 적응기

미래에 대한 고민

창신, 보문, 안암, 고려대로 이어지는 신내행 지하철 안에서 남몰래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내 시야에서 볼 수 있는 길게 이어진 좌석에는 사람들이 빈틈없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제각각의 사람들은 역이 정차할 때마다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했다. 전혀 눈길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계속 눈길을 끄는 사람도 있었다. 대개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차릴 때에는 내가 쉽사리 그쪽을 쳐다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우르르 타는 경우엔 나도 모르게 무슨 역인지 기억해 두게 되었다. 정말로 모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데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나조차도 그것을 습관처럼 보기도 하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난감할 때마다 의미 없이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는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하철은 점점 노선도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은 이 시간에 외곽으로 빠지는 지하철을 타지 않는 듯했다. 물론 나는 지하철을 그다지 자주 타지 않아서 실상은 잘 몰랐다. 어느새 상월곡, 돌곶이, 석계, 태릉입구로 움직였다. 왼쪽에 앉은 사람은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아니라서 나는 ‘요즘 쓸쓸하시지요? 무릇 행복이란’라는 글자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을 내렸다. 


목적지까지 천천히 걸었다. 언제나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게을러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따라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는데 전혀 서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여수나 강릉, 부산이라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느새 목적지인 카페 코스모스에 도착했다. 


나는 항상 그래 왔듯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곳은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매장이었고 싱글 오리진 원두를 사용했다. 마침 오늘 에스프레소용 그라인더에 들어간 원두의 원산지가 평소에 좋아하는 에티오피아였다. 아메리카노는 자두처럼 핵과류의 달콤한 맛이 났다. 착한 마음이 가진 따뜻함이 있다고나 할까. 맛과, 향과, 감촉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바리스타에게 커피가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나에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아주 짧고 전형적인 커피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때즘부터 나는 약간 졸렸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조금 더 앉아있기로 했다. 배가 고플 때 즈음에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얼른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계속 가난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타인에게 쉽사리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단골 카페나 가게에서 만나서 자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현재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운 좋게 돈벌이가 좋아졌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이것저것 캐묻는다. 그 자리에 없는 한 사람을 거론하면서 그의 우연한 성공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잘되고 있지만 근본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마치 탁구의 끝없는 랠리처럼 불과 몇 분 사이에 빠르게 오고 갔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돈을 벌고 싶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말했던 학교 선생님들이 내 성적으로는 아쉽게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갈 수 없다고 말했었다. 나는 서울에 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게 생각이 났다. 나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를 했다. 지방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해왔던 나는 결국 서울로 왔고, 열심히 직장을 다녔다. 그렇게 일 년 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문득 자신이 조금 불행하다고 느꼈다. 언제나 그랬듯이 외로움을 그냥 흘려 넘기는 것이 조금은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게는 타인의 흔적이 아주 희미하게 보일 것만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다. 어쩌면 잘 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인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전부 쳐내고 스스로를 방구석으로 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머리가 이상해질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삶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당장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되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늪에 빠진 것이다. 

이전 01화 서울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