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 이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뭐 말이 안 되긴 하지."
나도 모르게 본심과 달리 마지못해 수긍하는 대답을 해버렸다. 왜냐하면 어차피 논리적으로 타당한 의견을 표명해봐자 통화만 길어질 뿐 이로울 게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논리적인 의견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라는 것이 이때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아니. 네 동생은 가구 아르바이트하러 간다더니 지금 카드 쓴 것 보니까 나한테 거짓말시켜놓고 어디 술 마시러 갔나 보네. 아휴. 네 동생이나 너나 둘 다 참 걱정이다."
"전화해 보지 그래."
"뭘 전화해. 너는 뭐 일 안 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일단은 뭐... 당분간은 이것저것 해보려고..."
"너 지금 뭐하는데?"
"나 잠깐 산책하면서 집 앞에 노래 부르러 왔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결여된 채로 뒷말을 흐리다가 결국엔 입을 다물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상황과 계획을 전부 다 말한다면 부정당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눈이 뻐근해지고 약간 두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항상 하던 이야기들에도 이상하게 공격적인 말투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우리의 대화는 그다지 유쾌하지도 원활하지도 않게 되었다.
"너희 동생 드디어 들어왔네. 그만 끊자."
갑자기 엄마는 현관문에서 누군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뒤늦게 부아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간혹 이렇게 엄마의 푸념을 듣게 될 때면 반강제적으로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보통의 삶을 향해서 고통을 견디며 착실히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걱정은 마치 그것이 잘못된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깐 동안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가난한 미래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얼른 고개를 들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분을 삭이며 속으로 말했다.
내 반드시 언젠가 성공해서 엄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솔직하게 말해서 만약에 이 일 잘되기만 한다면 앞으로 내가 전보다 훨씬 더 잘 살 수도 있지 않는가. 지금 엄마의 삶을 보더라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할만한 처지가 못 된다. 만약에 내게 조언을 하려 들려면 당신 편에서도 당장에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계속 직장생활을 한다 해도 돈은 전혀 모을 수 없었다. 한 매장에서 오래 일하게 된다면 훗날 퇴사할 때에 약간의 목돈을 챙길 순 있겠지만 그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며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워낙 싫어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러한 이유로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던 것이다. 게다가 연봉을 협상할 때마다 상대방을 도저히 납득시키기 어려웠고 운 좋게 협상에 성공하더라도 인상된 연봉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오 년 즈음이 지났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 마냥 즐거웠던 시절은 첫사랑과의 이별처럼 이미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새로운 길을 파헤쳐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버렸다.
서울에 올라온 지 아직 이 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끌리는 것들을 따라가거나 혹은 지루한 것들을 피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소설을 쓰는 것에 사로잡혔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이 과연 소설가로서의 능력이 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소설을 읽었고 서투른 단편을 꾸준하게 계속 적어왔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가진 가치관을 현재의 나에게 자연스럽게 흡수시키기도 했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원래 집으로 곧장 가려고 했으나 충동적으로 동전 노래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목소리가 쉬던지 몸이 피곤해지던지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우울한 기분을 풀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