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강원도 교육과정, 수업의 방향
신경호 교육감 재임 기간 강원교육은 여러 측면에서 후퇴했다. 청렴도와 부정부패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학생의 학력과 행복도 역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학교 교육의 질도 마찬가지이다. 수업과 평가 방법도 주입식 수업, 일제식 평가로 퇴행한 장면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신경호 교육감 재임 기간 강원도교육청에 과연 ‘교육과정 정책’ 자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교육과정 재구성, 배움중심수업, 과정중심평가, 지역 연계 교육과정 등 예전에는 자연스럽던 것이 어느 순간 우리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이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 한다.
왜 강원도 교육과정인가?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란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이다. “학생을 어떤 인간으로 성장시킬 것인가?”, “그렇게 성장한 학생이 어떤 사회를 만들도록 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등에 대한 체계적인 답변이 곧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은 교사가 직접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전국 50만 명의 교사가 모두 각자의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국가가 대신 교육과정을 만든다. 이것이 국가 교육과정이다.
하지만 국가 교육과정은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한계가 명확하다. 국가 교육과정은 전국 공통의 기준이기에 그 내용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 교육과정에 학교와 학생의 특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고, 국가 교육과정 틀로 교사의 자율적 전문성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 교육과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교사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한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함께 한다. 그래야 교육과정이 내 것 같고, 우리 학교 학생의 특성을 담아낼 수 있다. 하지만 학교마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어떤 학교는 잘되고, 어떤 학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지역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지역 교육과정은 국가 교육과정과 학교 교육과정을 연결하면서, 지역의 특색과 교사의 집단지성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강원도에는 강원도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 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의 방향을 이끌고, 강원교육의 지향점을 담아내야 한다.
강원도 교육과정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 교육과정의 내용
강원도 교육과정에는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교육’, ‘모두를 위한 교육’, ‘좋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교육’,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는 교육’을 담아야 한다. 이를 통해 모든 학생을 전인적으로 성장시켜야 하고, 그렇게 성장한 학생이 좋은 세상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강원도 교육과정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담아야 한다. 전인적 성장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두루 기르는 것이다. 교육은 전통적으로 ‘지(知)ㆍ덕(德)ㆍ체(體)’의 고른 성장을 지향했다. 이에 대응하는 교육학적 용어가 ‘인지적 영역, 정의적 영역, 심동적 영역’이다. 교육과정 문서에서는 내용 영역을 ‘지식, 기능, 태도 및 가치’로 나눈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삶의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발휘되는 능력을 ‘역량’이라고 한다. 삶의 역량은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행복’, ‘자아실현과 사회적 기여’를 지향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과정이란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실천하는’ 전인적 인간을 기르는 교육과정이다.
강원도 교육과정은 마땅히 ‘모두를 위한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다는 것이 모두를 1/N로 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을 하려면 먼저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생각해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학생’, ‘배움이 느린 학생’, ‘장애가 있는 학생’,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학생’ 등을 위한 특별한 교육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는 ‘개별화 교육과정’, 가장 힘들어하는 학생을 먼저 배려하는 ‘보편적 학습설계’ 등이 필요하다.
강원도 교육과정은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담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에는 기후 위기, 불평등, 인구 소멸, 인공지능의 도전 등 수많은 어려움이 놓여 있다. 미래교육은 단지 ‘미래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교육’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교육은 ‘미래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을 ‘변혁적 역량’이라고도 한다. 이를 위해 민주시민교육, 생태전환교육, 디지털 소양 교육 등을 교육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반영해야 한다.
강원도 교육과정은 ‘지역의 특색’을 담은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강원도를 잘 알고 강원도를 사랑하는 학생을 기르는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태적 환경과 삶의 터전을 배우도록 해야 하고, 교과와 지역의 특색을 연계해야 하며, 나아가 강원도를 살리는 인재를 기르는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지향점은 모든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강원도 교육과정은 어떠한 주제를 각 교과와 연계하여 다루어야 할지 명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 교과에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연계된 내용을 다루도록 해야 하며, 과학 교과에서는 생태교육적 요소를 더욱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지역 사회와 연계한 진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강원도교육청과 학교가 신설과목을 더 많이 개발하고 개설하도록 해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학교자율시간’과 연계하여, 고등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와 연계하여 지역과 학교의 특색, 교사의 자율적 전문성에 따른 신설과목을 만들 수 있다. 강원도의 특색을 살린 과목으로는 ‘지역사회와 진로’, ‘해양 스포츠 과학’, ‘AI 스마트팜’ 등을 들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지향점을 살린 과목으로는 ‘DMZ와 생태 평화’, ‘헌법과 민주주의’, ‘인권의 눈으로 보는 우리 사회’ 등을 들 수 있다.
강원도 교육과정은 규제적 지침보다는 허용적 안내를 담아야 한다. 이를 통해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전문성을 촉진하며, 지역적 현실에 기반한 교육활동을 적극 안내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교사와 학생이 함께 꾸도록 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들도록 할 것인가 – 교육과정의 틀
강원도 교육과정은 학교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을 위한 친절한 안내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서는 교사의 집단지성에 바탕을 둔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교사 개인 차원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넘어, 학년, 교과, 학교 전체 교사들이 참여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 평가회, 교육과정 워크숍, 학년 및 교과 협의회가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시간을 내기 어렵고, 막상 시간을 내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개발 운영해야 하는지 난처한 경우가 많다.
이를 돕기 위해 ‘교육과정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란 ‘교육과정을 함께 숙의하고 개발하는 구조화된 틀’이다. 교사가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고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학교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원리와 절차를 체계적으로 안내한 절차이다. 좋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비본질적인 것’ 대신에 ‘본질적인 것’을 보게 하고, ‘보이지 않은 것’을 새롭게 상상하게 만든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IB가 참고할 만한 교육과정 프레임워크이다. IB는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학생의 탐구를 이끌기에 유용한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IB는 우리나라의 맥락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고, IB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혁신교육의 맥락에 맞고, 교사의 주체적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는 <좋은교육과정연구소>가 개발한 ‘좋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좋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는 ‘좋은 질문’과 ‘구조화된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좋은 질문’은 ‘좋은 교육의 본질과 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질문이고, ‘구조화된 절차’는 숙의의 결과를 구체화하게 한다. 여기에는 교육과정 목표 수립부터 단원 설계, 평가 설계에 이르기까지 학교에서 교사가 일 년 동안 해야 할 절차가 체계적으로 안내되어 있다.
강원도 교사들은 IB보다 훌륭한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강원교육의 맥락과 지향점을 담은 강원도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 있다. 이를 GB(Gangwon Baccalaureat)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강원도 실정에 적합한 교육과정, 교사의 공동체적 숙의 과정을 통해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틀이다.
이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교사들은 교육과정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교사는 “우리 아이들을 어떤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 “그러기 위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며 숙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학교 실정과 학생 특성에 맞는 학교 교육과정을 개발하게 된다. 이 교육과정은 설계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통해 실현하고, 평가를 통해 확인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단위, 학교 단위 워크숍 기반 연수가 필요하다. 인근 학교를 여러 개 묶어 서로의 교육과정을 배우고 서로의 수업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강원도 교육과정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직접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경험을 하며, 이를 다시 자기 학교에 적용한다. 각 학교는 학기 말, 학년말 교육과정 평가회를 통해 얻은 시사점을 바탕으로 2월 ‘학교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주간을 운영한다. 이때 강원도 교육과정 프레임워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기 중에는 정기적으로 수업 나눔을 진행하고,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 점을 공유한다.
GB는 ‘Gangwon Great Books’의 약자이기도 하다. 미국의 세인트존스 대학은 세부 전공 없이 4년간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의 세미나 수업으로 유명하다. 강원도 교육과정 전문가, 학자, 교사, 학부모, 시민이 모두 참여하여 초, 중, 고 학교 급별로 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할 수 있다. 강원도 학생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이 책들을 자연스레 읽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문해력이 쑥쑥 자랄 것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처럼 정답이 없는 논술, 폭넓은 사고력이 필요한 평가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학생의 진짜 학력은 이렇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강원도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당연히 강원도 교사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이 과정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지역별로 교육과정 연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정 연구회는 교육과정 이론을 학습하고, 학교 교육과정의 사례를 나누며, 더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강원도 학교 실정에 맞는 신설과목을 개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강원도 교사의 전문성은 더욱 향상되고,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강원도 교사들이 새롭게 만드는 강원도 교육과정에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담게 될 것이다.
글쓴이: 이형빈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매거진 겨울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봄을 준비하는 겨울
1. 특집_강원도 교육과정, 수업의 방향
2. 특집_강원도 교육과정, 수업의 방향
3. 인터뷰_서울대 10개 만들기 김종영 교수
4. 학교이야기_신입생 모시기 전쟁
5. 책이야기_진우의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