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의 거울

책 이야기

by 모두가특별한교육
‘진우의 거울’을 읽고: 가능함을 강요하지 않는 자리에서



아이를 갖게 되면 우리는 늘 바란다.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걸 바라게 마련이지만—인간의 욕심이란. 지금 자녀 셋을 키우고 있지만 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건 그저 운이 좋았던 덕분이라 여긴다. 아이들이 무탈하게 태어났음에 늘 감사하다.


‘만약 뱃속의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첫 아이의 잉태를 깨달았을 때부터 계속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물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단 한 번도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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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과 마음이 있는 아이, 우리 사회가 규정한 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끊임없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예고한다. 혹시나하는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이 절망으로, 다시 절망하는 과정 끝에 완전히 희망을 품지 않고 바닥을 만나야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며 장애를 수용하게 된다. 그제서야 비로서 장애아의 부모로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떠오른다. 저자도 다르지 않았다. 삼각함수의 사인, 코사인 곡선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감정의 곡선을 수없이 겪고 나서야 요동치는 그래프의 파형을 잠재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쉬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로서, 교사로서 막내 아들의 발달장애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한 것은 미술교사인 저자가 아들과 비슷한 발달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 수업을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쉬운 미술 놀이에서 점차 수준을 높여 새로운 활동으로 심미적 자극을 주며 교육적 효과를 노리겠다는 교사 애초의 계획은 무참히 실패로 끝난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벽만 마주하게 된다. 무능력의 체감이라고 할까? 차가운 현실의 자각이라고 해야 할까?


교사들의 흔한 패턴, 목표를 갖고 무언가를 지시하고 객체인 학습자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내려 놓자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고, 무언가 시켜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개성 있는 작업이 펼쳐졌다.


누가 무엇을 시키거나 가르치는 것과 상관없이, 각자 나름의 내적 욕구가 있고 그것을 표현할 기회가 보장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표현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가능하게 만들려 하거나, 애초에 ‘할 수 없음’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성장을 목표로 삼는 노력이 얼마나 무용한지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발달장애가 보이고,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원점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한 뒤 다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비고츠키의 비계 이론이나 영어교육학에서 말하는 comprehensible input―이 모든 대상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는 사실. 모든 학생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조건과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교육의 목표도 제대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를 다루는 서사에는 흔히 ‘당신도 할 수 있다, 당신도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다. 물론 최근에는 이러한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성공한 발달장애인의 사례는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운 누군가의 지원 덕분이다. 대개는 부모나 가족의 헌신적인 지원 속에서 이루어진 성공일 것이다. 만약 그 지원이 사라진다면, 그 성공 역시 물거품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 문장은 가족의 지원 없이는 발달장애인의 ‘성공’조차 지속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왜 국가와 사회의 폭넓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단단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변재원의 『장애시민 불복종』, 김원영의 『실격 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에서 쓴 의미 있는 책들이다. 특수교사의 입장에서 통합교육을 이야기한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을 그리다』, 초등교사가 교실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천경호의 『함께 성장하는 통합교실 이야기』는 교사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의 시선에서 쓴 글은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렵다. 더구나 장애인의 부모이자 교사인 사람이 쓴 책은 더욱 드물다. 이수현의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에 이어, 그렇게 두 번째로 만난 책이 바로 이 『진우의 거울』이다.


제목을 다시 곱씹어 본다. 이 책은 아들 진우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발달장애인을 들여다보는 창은 결국 볼록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거울은 대상을 비추지만, 그 너머에 있는 우리의 태도와 사회의 얼굴을 함께 드러낸다. 『진우의 거울』이라는 제목은, 결국 진우를 바라보는 이야기이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가 아닐까?


글쓴이: 황경재 우천초등학교 교사



매거진 겨울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봄을 준비하는 겨울


1. 특집_강원도 교육과정, 수업의 방향


2. 특집_강원도 교육과정, 수업의 방향


3. 인터뷰_서울대 10개 만들기 김종영 교수


4. 학교이야기_신입생 모시기 전쟁


5. 책이야기_진우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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