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자유의지
햇빛은 이제 좀 더 짱짱하고 투명하다.
불어오는 바람은 더 시원해졌고 짙은 나무 그늘과 해 지기 전의 하늘색은 더욱더 원색 적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산들 거리는 바람,
계단을 뛰어오르며 느껴지는 심장 박동,
먼산, 먼 하늘 모든 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난 말 그대로 백수가 되었다.
백수란 말 자체가 주는 어감이나 단어가 너무 부정적으로 느껴져서 사뭇 쓰기에는 꺼려지는 말이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이제 나에게 찾아온 시간의 여유와 멈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향유할 것이다.
시간의 굴레가 주는 답답함과 또는 편안함,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주는 습관성 안주와 경제적 안정,
그 모든 게 이제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일할 기회를 쉽사리 잡지 못하면 또다시 성급함으로 잘못된 선택의 구렁텅이에
나를 밀어 넣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호기롭게 망상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이 고생이냐며
또다시 질책하고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이 순간만큼은 난 내가 선택한 자유를 읽고 듣고 보고 느낄 것이다.
거창 하진 않지만 끊어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작은 용기를 칭찬하고
내가 스스로에 부여한 시간의 자유를 누릴 것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중력의 물리법칙을 이야기지 않다라도
시간은 늘 상대적이며 똑같은 가치로 부여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서 조차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러가듯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권능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시간에게만큼은.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지나갈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친 눈빛 속에서도
우리는 세상을 멈추고 나를 위한 시간을 창조해내는 능력을 펼치는 존재들이다.
삶의 모든 순간, 매 순간순간이 다 다를 수 있는 건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는 나뭇잎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가파른 강물에서도 때로는 물을 거스르고 원하는 곳을 찾아가는 연어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찾는 자유는
모든 것이 결정된 미래와 흐르는 시간 속의 편안함에 나를 던지고 편안한 안식을 느낄 때가 아니다.
자유의지가 나 스스로를 규정하고
매 순간의 선택이 나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휘저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궁극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우리의 자유의지 또한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이라면
그 절대적 권능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끝없는 파도를 뚫고 항해하는 오디세우스의 배처럼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원래 자유였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