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끼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남산. 늘 오르던 길이어도 무척이나 헷갈리고 불안하다. 정말 코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올라가다 보니 무섭기도 했다. 정상에 다 오른 후에도 내가 정상에 있는 건지 산중턱에 있는 건지도 가늠이 가질 않는다. 남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늘 똑같은 장소에서 기록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는 뿌연 안개만이 정상에 왔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며칠 후 찾은 남산은 그저 화창하기만 했다.
어디에서도 남산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 낀 남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오른 때와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 같은 길로 오르고 정상을 찍었음에도 오름의 강도나 심리적 상태가 너무나 달랐다. 보이지 않을 때는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고, 늘 오르던 길임에도 불안했다. 하지만 화창한 날에는 시작점에서부터 보이는 남산 타워가 그저 위안을 준다. 중간중간 내 정상이 잘 보였기 때문에 더 힘들기도 하고, 오히려 힘이 나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 문득 과거 내가 지나온 길을 회상해 본다. 나 또한 막막한 나날을 겪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이 그저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유독 다양한 경험을 한 나로선 언제나 불안정한 삶 속의 연속이었다. 보장되어 있던 해외 유학생활은 급변하는 경제적 환경으로 정말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공장 생산 라인에서 조립과 포장을 하며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며 온라인 대학교 수강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열정은 넘쳤지만 앞 날은 그저 막막하게만 안개 낀 남산 같았다. 계획이라고는 있을 수 없을 만큼 그저 하루를 살기 바쁘고 경제적 어려움의 굴레는 꿈을 사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밑바닥에서 자재를 주워 공부를 하고, 생산라인과 물류를 이해하고, 영업직 그리고 사무직을 거치면서 안개는 걷히는 듯해 보였다.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 간의 고생의 결실이 맺는 순간이라 믿었다. 물론, 그 믿음의 확신이 오자마자 또 다른 안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안개의 시작
4, 5년을 정말 고생하며 온몸으로 배운 분야에서 사직서를 냈다. 더 이상 몸도 마음도 견딜 수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즉흥적이라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지난 수년간 쌓였던 모든 것이 터지면서 퓨즈가 끊어진 느낌이었다. 나름 그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다 쌓았고 이제 실전으로 써먹으며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학을 포기했을 때보다 더욱 막막했다. 막막함을 넘어 매 순간이 괴로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인생의 패배자같이 보였다. 다양한 기회와 수많은 지지를 받으면서 차근차근 올라가던 내가 한순간 뛰어내렸으니 안 다쳤을 리가 없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방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기도 했다. 그래도 나 자신을 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지는 않았다. 그저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냈다. 운동을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그리고 답답할 때면 잠시 멍하게 한강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안개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숱한 날 우연히 새벽에 본 외국계 기업의 공고를 넣었다. 분야도 생소하고 경력도 없었다. 그저 될 수 있단 희망보다는 무엇이든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매일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갔고, 운이 좋게 면접의 기회가 생겼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모든 질문에 답을 하고 열심히 실기를 준비했다. 경력이 없어 임시직을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계약직을 거쳐 지금은 정규사원으로 그 어느 직장보다 오래 일한 직장이 되었다.
안개가 걷히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적어도 안개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고 나 또한 움직이고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화창한 날이 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치 앞도 안 보이기 때문에 막막하고 더딜 수밖에 없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앞으로만 나간다면 분명 안개는 걷힌다는 것을 느꼈다. 남산에 낀 안개도 시간이 지나니 지나가는 것처럼 이젠 막막하더라도 그저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