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시작한 남산 오르기는 어느덧 올라야만 하는 습관이 되었고, 매일 남산의 다른 풍경과 느낌을 받는다. 오르는 1시간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잊기도 한다. 지금까지 지내온 나날을 보면 모든 면에 잘 참아온 거 같으면서도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참는 게 점점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취미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나 근심을 날려 버리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일은 화를 내거나 싸우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풀기도 한다. 이 모든 부분에서 묵묵히 참거나 담아두는 나는 많이 미숙하다.
오늘의 남산을 잊어야 내일의 남산이 온다.
지난 1년 이상 남산을 오르면서 감정의 요동은 잠잠해지고, 조급하던 마음도 조금 덤덤해진 듯하다.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격한 운동도 아니지만 완만한 경사로를 쉬지 않고 올라가다 보면 체력의 한계가 오고 담아두던 감정들이 조금씩 잊히고 정리된다. 더 이상 담아주거나 쌓아두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외로움, 떠나간 사람들, 그리고 나의 걱정과 근심을 내 마음속으로부터 지워본다.
혼자 아닌 나
사춘기 때부터 하숙을 했고, 어렸을 적부터 혼자 결정해야 했던 나는 늘 외로웠다. 새로운 곳에서 새 친구를 만드는 것이 설레기도 했지만, 가족과 오랜 친구들과의 그리움은 늘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도 항상 회사일로 피곤해도 주말에 약속을 잡거나 경조사에 참석하며 나에게 빈틈을 주지 않았다. 공백과 혼자 남게 되는 건 곧 외로움이란 강박이 있었나 보다. 약속이 없으면 일을 했다. 그렇게 온전히 쉬는 날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남산을 오르는 습관을 가진 지 1년이 된 지금, 이제 나만의 시간을 찾게 되었다. 혼자 만의 시간 속에서 자유를 느끼고 공백과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남산을 오른다. 외로움을 잊게 되었고, 나만의 시간이 편해진다.
이별을 잊어야 시작이 있다
하늘나라로 떠난 사람들부터 오래 사랑했던 사람까지 근래 떠나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헤어짐이 싫어 만남을 거부했을 정도로 이별은 늘 힘들다. 한 번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내 일처럼 챙기는 모습이 따듯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이별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마음은 늘 추위 속에 남을 위한다.
인생에서 정말 아픈 이별은 늘 있다. 그러한 이별을 겪으면서 한 번 더 성장하게 된다. 아프지만 잘 정리하고 이별을 맞이하면 좋은 추억이 되고, 끝남을 통해 새로운 만남이 다시 시작되는 기회가 열리는 것 같다. 오늘도 내가 오른 남산을 잊고, 내일의 남산을 만나기 위해 내 삶으로 돌아간다.
걱정 말아요 그대
모든 것이 술술 풀리고 다 가진 듯한 성취감에 취했던 적을 고백한다. 내 뜻대로 되는 인생이라 교만해짐과 동시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 그럼 마음이 들었던 그 순간부터 15년째 내리막만 있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다 가져보기도 하고, 다 잃어보기도 하면서 미래를 계획에 더욱 신경 쓰고 매사에 걱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래이고 다 잃어본 경험이 있기에 무조건 잘 계획하고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까지 있어 조급함으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무리하기도 한다.
아무리 내가 인생에서 가고픈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도 뜻이 없다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남산의 날씨처럼 우중충한 남산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갑자기 내린다면, 우산을 준비 안 했다는 사실에 근심과 실망으로 가득 차는 것이 본연의 내 모습이었다.
때론 그냥 흘러가는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미래의 걱정을 잊어보기로 한다. 적어도 남산을 오를 때만큼이라도 잊어보는 시도를 했다. 미래에 대한 고뇌로 인상을 쓰고 다니던 내 모습을 잊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던 비는 시원한 단비에 운동을 마친 자연의 보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젠 외롭지도 않고, 이별과 미래가 두렵지도 않다. 힘들지만 잊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잊음에 익숙해져야 새로움에 잘 적응할 수 있다. 좋은 추억과 교훈으로 삼고 뒤돌아 보지 않으려 한다. 이젠 잊힐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잊고 바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며 남산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