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 꿈이 많았다. 세계 경제를 공부한 후, 유엔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구호단체에서 우물 만드는 일을 꿈꾸기도 했고, 헬기 조종사를 준비하려 하기도 했으며, 군인이 되기 위해 재입대를 고민하기도 했다. 정비사 자격증을 따고, 영어 회화를 가르치고, 수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고 싶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적는다면 오늘 하루가 부족할 만큼 늘 꿈꾸며 살았다. 물론, 꿈만 꾸기만 했지 실제 실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산을 오르며 건강을 챙기겠다는 이 꿈도 2016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다. 남산을 처음 오르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2024년 5월 16일, 시작하는 것이 이젠 많이 익숙해진 남산
꿈 많은 몽상가
꿈만 꾸며 살았다. 마치 내가 복권 1등에 당첨된다면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처럼 인생에서 하고 싶은 꿈을 적고 상상에 빠져 살았다. 12년 전 우연히 들은 꿈 세미나와 친구의 소식은 적어도 이제 꿈만 꾸는 나 자신에서 꿈을 좇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꿈만 꾸는 몽상가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싶다면 몽상가에서 벗어나 실행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꿈 세미나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깨달음을 얻고서도 십수 년간 실행을 위한 시작이 너무나 힘들었다. 꿈을 실행할 수 없는 핑계는 늘 마르지 않고 창의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변명만 늘어났다.
내 꿈과 목표가 한없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내 말에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식사 한 번 하자, 인사한 번 드리겠다는 말도 이젠 인사치레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때쯤, 가장 아끼는 동생의 어머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인사 한 번 드리겠다는 말을 숱하게 하고 한 번 인사드린 것이 인생에서 마지막이었고, 나의 말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너무나 컸다. 제일 아끼는 동생에게 해줄 수 일은 하나도 없었고, 그저 빈소를 같이 지켜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음에 뼈저리게 반성했다. 그 이후, 인사치레는 내 인생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실패의 공포
유독 실패를 두려워했다. 실패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실패를 경험하며 내 꿈을 내려놓은 사실에 괴로워 술 한 잔으로 달래는 하루도 많았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커졌고, 실패하기 싫어서 실패의 가능성을 피해 가거나 쉬운 일을 택했다. 그런 나는 실패와 꿈을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실패의 결과는 늘 쓰다. 이룬 것을 앗아가기도 하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기도 해야 한다. 쓰지만 약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쓴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이고 다시 오르는 자가 결국 꿈을 이루는 열쇠를 지니는 것 같다.
늘 말로만 꿈을 성취하려던 꿈 겁쟁이였던 나는 실행하지 않아 결국 기회도 사랑도 잃었다. 잃고만 있던 내가 운동화를 신고 남산 초입으로 가기까지 7년이 걸렸다. 실패를 맛보더라도 첫 발이라도 들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꿈은 고사하고 작은 무엇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2023년 9월의 시원한 주말 새벽, 드디어 신발끈을 단단히 묵고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숱하게 실패했다. 열두 걸음에 포기하고, 산 중턱에서 포기하고, 아예 몇 주간은 남산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남산을 오르기 위해 첫걸음을 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 남산을 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남산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대부분 그다음 날 나는 남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더 이상 주변에 내 꿈을 이야기하지 않고 인사치레도 안 한다. 그저 내가 정한 꿈을 향해 조용히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하고, 밥 한번 먹기 위해 오늘도 약속을 잡는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이유불문하고 시도한다. 그리고 꼭 이루고 싶다면 실패의 쓴 맛을 보더라도 시작하고 다시 시작한다. 실패를 해야 다시 재도전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하나의 사례로 통해 성공의 확률을 높인다.
나는 시작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이유불문하고 행동으로 내딛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