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만 했던 계절, 이별만 했던 계절

내 잘못이 맞아요.

by 글짓는 날때

“안 들어가고 뭐 하냐?”


“어. 왔냐. 니 오면 담배하나 피고 같이 들어갈라고.”


“마른입에 뭔 담배… 일단 적시고 피자. 목마르다. 사장님, 잡부 둘~. 소주는 갖고 가요. 왜 그래? 뭐, 할 말 있어? 애들은?”


“이따가. 어제 은욱이 새끼 만났는데. 이 새끼 얼굴이 반쪽이 됐더라고.”


“그 새끼가 왜 반쪽이 돼. 당사자는 가만있는데. 미친 새끼네 그 새끼.”


“야이씨, 미친 새끼. 너 알고 있었어?”


“윤후가 얘기해 주더라. 둘이 잤다고.”


“씨발, 윤후랑도 잤데?”


“아니. 미친놈아. 은욱이랑 수연이랑 잔걸 윤후가 얘기해 줬다고. “


“윤후는 어떻게 알았대?”


“수연이가 얘기했데. 그나저나 이것들은 직접 말할 용기도 없으면서 왜 둘이 처 자고 지랄들이야 지랄들은.”


“좋아서 그랬겠냐?”


“넌 싫은 여자랑 자냐?”


연수연.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그녀는 20살의 나이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으며 뚜렷한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에 비해 반가운 표정으로 나의 계절에 들어왔다.


봄이었고 20살이었다.


완전하게 성장하지 못한 정신과 노병사만 남은 절정의 육신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유희로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한다고 답했다.

행복한 계절이었고 계절이 계속되길 바랐다.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다. 구김 없이 털털하고 치장 없이 예뻤다. 내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자연스레 친해졌다. 가끔 나의 부재에도 그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어울려서 생긴 일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나에게 곧잘 얘기해 주곤 했다. 즐거워 보였고 친해진 모습에 미소 짓기도 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보기 좋았고 즐거웠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었다.


머리끈으로 곱게 묶은, 잘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소포로 받고 다섯 번인가 토했을 때 윤후가 찾아왔다.

계절이 끝났다.


구김 없이 털털하고 치장 없이 예뻤던 그녀는 내가 있어도 외로웠다고 한다.

“너랑 헤어지고 집에 다 도착했을 때였어.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은 거야. 그냥 네가 보고 싶었고 그냥 네가 거기 있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갔는데 은욱이가 있었어. 그냥 거기에 은욱이가 있었어. 그게 다야."


하마터면 ‘누구라도 괜찮았던 거야?’라고 물을 뻔했다.

일말의 이성은 있었던 것 같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선 안 되는 생각이 있고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선 안 될 말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해선 안될 행동이 있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래도 외로웠다고 한다.

그 아이가 외로웠다면 내 잘못이다. 그날 함께 있었어야 했고, 그 아이가 돌아왔을 때 거기 있었어야 했다.

그 아이가 외로울 때 찾은 사람이 나였어야 했고 그러지 못했다. 내 잘못이다.


그리고 친구였다. 변명 썩인 사과를 들었다.

적지 않은 술을 마셨고 혼자였다고 한다. 공기는 따뜻했고 치장 없이 예쁜 그녀가 앞에 있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술을 마시게 되었고 모든 게 늦었다고 한다.


친구라며, 개새끼


그 계절 동안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한다고 답했다. 행복한 계절이었다.


그 계절 동안,

그녀는 사랑만 했고. 난 이별만 했다. 내 잘못이라 다행인 계절이었다.




epil.1

나에게 사실을 말해주려다 되려 “윤후랑도 잤대?”라고 놀라던 미친놈은 가끔 안주거리가 됩니다.

물론 윤후만 씹는 전용 안주입니다. 아이고 친구야…


epil.2

치장 없이 예뻤던 아이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하찮은 기도겠지만 외롭지 않게 행복하길 바랍니다.


epil.3

그 새끼는 나의 계절에도 친구들의 계절에도 없습니다. 잘살겠죠, 뭐.


Notice.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실명이 아닌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keyword
이전 04화돌아보니 있었고, 돌아보면 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