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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급대원의 다반사

119 구급차

by 둥이

일상으로의 행복 ^^

"땔감으로 쓸 마른 나뭇가지를 주우며 해질 무렵에 가문비 나무숲을 걷는다. 촉촉한 대기가 느슨하고 따뜻하다. 숲속 카펫에 떨어져 있는 무스의 똥이 한결 물러져 있다. 버드나무 새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붉은 다람쥐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숲도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작은 모닥불이 흔들리고 있다.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내 마음을 풀어준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역시 묘한 거야! 사람 마음은 아주 자잘한 일상에 흔들리지만 새 등산화나 봄기운에 이렇게 풍요로워질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정도로 얕다.사람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밤이 오고 별이 나왔다. 랜턴을 켜고 일기를 쓴다. 또한 해가 시작되었다."

호시노미치오의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 P130 이른봄


다반사라는 말 자주 하시나요 차나 밥을 먹는것처럼 일상적인 일들을 말할때 다반사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특별한 일들 보다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늘상 하던데로 시간을 보냅니다. 별볼일 없을것 같은 그 시간안에서 우리는 타인과 말을 하고 관계를 맺어 나갑니다. 인생엔 사건도 많치만 평범함 또한 가득합니다. 깜짝 놀랄일도 벌어지기도 하지만 별일없는 습관과 반복도 가득합니다. 고상한 가치만 필요한것이 아니라 익숙한 애정의 몸짓과 말장난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장 자주 이야기하는 것도 일상입니다. 큰 불행을 당한 사람이 가장 되찾고 싶은 것도 일상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묘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주 작은 일상에 흔들리지만 또 평범하고 보통인 그런 일상을 그리워 합니다. 그런 일상은 나른한 봄기운에 부푼 흙을 보면서 풍요로워 질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정도로 얕습니다. 일상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허무함을 줄때도 있어요. 일상에 묻혀 순간의 소중함을 잃어 버리고 살아 가지요. 하찮을것 같은 일상을 안다는것이 어떤 의미 일까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은 시간의 흐름을 잃어 버리게 해주어요. 아시나요 ! 오직 사람만이 시간속에 갇혀 산다는 것을 ! 먹이를 쫒는 맹금류에게는 지금 그 순간만이 있어요. 꼬리치며 달려드는 애완견에게는 어제의 서운함은 없을거예요 생태계를 이루는 먹이사슬 속에는 먹고 먹히는 치열함이 있어요.그 치열함은 삶의 본능 이겠지요. 그 치열함이 자연 이겠지요. 하찮을 거라 생각하는 풀들 에게도 뿌리내려 번식하려는 숨은 노력이 있겠지요. 모든 만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치열하지 않은 것들은 없어요. 삶은 아름다워요 . 살아 있는것들이 뿜어내는 힘이란게 있어요 그 힘이 일상을 이루는거예요. 얼마나 대단한 거예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은 그런 대단한 치열함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것들이예요. 형체 없는것들이라 만져 질수 없을테지만 눈을 감고 잡아 보세요.


119 구급대원의 다반사


어제 저녁 아이가 119 에 실려 갔습니다.

어제도 다를것 없는 하루를 보냈었지요. 일곱시 삼십분은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이예요.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줄 아는 쌍둥이 둘째 지완이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 랍니다. 야외체험 학습이 있는 날이라며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아이의 모습이 더 귀여웠어요. 피아노학원 공부방을 다녀 오면 오후 다섯시 혹은 여섯시가 됩니다. 가끔 먹는 고등어구이와 가자미 구이를 발라주었어요. 둘다 가자미구이를 먹겠다며 아우성을 칩니다. 한아이가 먹겠다고 하면 덩달아 같은것 먹겠다고 하다보니 가자미가 부족했어요.

더 맛있는 고등어 구이는 반이상 남게 되었지요. 특별이 늦게 들어오는날이 아니면 잠들기전 한시간 책을 읽어줍니다. 어제는 스탕달의 적과흑을 읽어주었어요. 아이들의 집중력을 놓치지 않으려 끊어서 60페이지 정도씩 읽어줍니다. 그렇게 스탕달의 언어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게 되었지요.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지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 났어요 그리곤 화장실로 갔어요


"아빠 내 얼굴이 이상해 배도 아프고"


졸린눈을 비비며 아이에 얼굴을 보았어요. 아이에 눈이 벌에 쏘인것처럼 부어 있었어요. 아이는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앉아 있었어요 울며 설사를 했어요 콧물도 나오고 목도 아프다며 우는 아이를 우선 쇼파에 눕혔지요 큰아이 주완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힘든날이 겹친걸까요 엄마는 그날 하루종일 전화통화가 안되었어요 큰아이 까지 목소리가 떨리더군요


"아빠 119 불러야 될것같아 지완이 숨도 제대로 못쉬는것 같아"


연락이 닿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못해 119에 전화를 했어요. 차분하게 물어보는 구급대원한테 정신없이 설명했어요. 그사이 아이는 가렵다고 온몸을 긁기 시작했지요. 눈은 더 부어 오르고 콧물도 나오고 배는 아프고 아이는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어쩔줄 몰라했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 였어요.


그 순간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10시50분경 되었을까요 119 구급대가 1층 현관에 도착한게 보였어요. 지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지요. 엘리베이터가 그렇게 느리게 작동된다는걸 처음 알았어요. 구급대원들은 지완이 상태를 보자마자 알러지쇼크 일거라 말했어요. 구급대원은 주변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10세 남자아이 입니다. 미열이 있구요 눈이 붓고 목 점막 콧물등 숨쉬기 불편합니다. 이런 증상인데 받아 주실수 있나요?"


저는 응급대원의 말이 허공으로 날아 가는듯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런 응급상황인데 받아주실수 있냐며 물어보는게 이상했어요.


"보호자님 대부분의 병원 응급실에 소아전문의가 없어요 가도 안받아 주는 경우가 다반사 입니다. 지금 두군데 전화 했는데 안받는다 하네요. "


아파트 일층 현관에서 구급차는 떠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받아줄 곳을 찾아야 했지요. 이십여분 지나서 다행히 한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준다고 했어요.


" 보호자님 출발하겠습니다"


작년에 아내가 실려왔던 같은 병원으로 지완이가 실려 오게 되었어요. 눈이 퉁퉁 부어 쳐다볼수도 없는 지완이 왼팔에 주사바늘이 꽂혀어요.알러지 진정제와 항히스타민제가 처방 되었어요.


"어떤것에 접촉이 되어서 알러지가 온거예요 만져서도 올수 있구요 먹어서도 올수 있어요 아이의 오늘 하루를 기억하셔서 그걸 찾으셔야 됩니다."


담당의사는 응급대원들 보다 더 차분하게 감정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더군요


내일 학교 가도 되구요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되구요 접촉한게 무엇인지 잘 찾아보세요


급하게 구급차에 태우느라 신발도 신지 않은 지완이를 안고 택시를 탔어요. 택시 기사는 어제도 이런 아이를 태웠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아이를 침대에 누이고 거실 쇼파에 앉았습니다.

응급대원이 말한 다반사 예요 라는 말이 귓전에서 맴돌았어요. 짧았지만 강렬하게 일상을 흔들어 놓았던 시간 이였어요.


행복은 먼데 있지 않더군요. 파랑새 처럼요.

119 구급대원이 했던말, 그 다반사가 다반사가 아니기를 기도했어요.

일상의 행복 그건 지금 여기에 있어요.


지완이가 편안하게 잠들었네요. 잠든 아이를 한참을 쳐다 보았어요. 그순간 후지와라 신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너가 있었다" 책에서 읽은 한가족의 이야기가 생각 났어요.


"아내는 어느날 암으로 쓰러졌어요. 평소 아이들과 남편을 사랑했던 아내는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이 좋아하는 볼낙을 사옵니다. 볼낙 요리를 해주기도 전에 아내는 의식불명이 되지요. 의사는 아내의 임종이 멀지 않았음을 가족에게 알려주지요. 가족들은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아내 주변에 모여 있었어요. 그 순간 죽어가던 아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입술을 오므리며 이야기 합니다. "볼낙 요리해 드세요" 죽어가는 아내는 거창한 말을 한게 아니였어요. 죽어가면서도 아내는 그녀의 일상을 이야기 했어요. 아내는 마치 오늘을 살아 가듯이,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아 가듯이 이야기 하며 죽어 갔어요..(...) 아내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ᆢ) 널어둔 이불시트와 물이 똑똑 떨어지는 부엌의 수도꼭지도 걱정 하는듯 했어요.. 자식은 어머니가 마음에 두고 있을 것 같은 일상에 세세한 일들을 상상하면서 걱정거리를 하나하나 놓고 가시도록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지요 (ᆢ)


퇴계 이황선생도 죽는 그날 매화 나무에 물 주라고 말했다지요. 일상은 이토록 소중한거예요. 일상을 채워 가는 모든것들을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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