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묻은 신발
수리산을 다녀온 날이면 아이들의 운동화는 흙으로 덥혀있다. 바닥엔 거북이 등껍질 만큼이나 단단해진 찱흙이 고무밑창에 들러 붙어 있어 아이들은 신발을 끌고 다닌다. 이미 운동화 윗부분은 진흙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양말 까지 베어 들어 갔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발이 아닌 온몸으로 흙물을 뒤집어 쓴다. 수리산 계곡 곳곳엔 흙길로 만들어 놓은 수렵장 같은 곳들이 많다. 아이들은 나들이한 옷 그대로 흙위에서 뒹글고 만지고 파헤친다. 그날 하루의 고단함은 신발에 고스란히 베어있다. 아이들의 시간이 신발안으로 들어와 있다. 문제 될게 없다. 어른들의 걱정스런 눈길만 걷어 낸다면 그야 말로 아이들의 세상이다.
"아빠 신발이 무거워서 못 신겠어"
"털면 되지"
"계곡물에서 씻고 가자"
세상에는 이처럼 감정을 담아내는 신발들이 많이 있다.
발레리나가 신고 있는 앞코가 헤어진 신발과 밥늦게 뒷축을 끌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닳아 없어진 구두와 새벽 공양을 위해 가지런히 벗어놓은 스님들의 고무신과
온종일 온몸으로 뛰어 놀줄아는 아이들의 흙묻은 신발과 농번기 논밭의 검은 진흙이 전신을 덥은 농부의 까만고무장화 까지
이런 저런 모든 신발은 오롯이 감정을 담아낸다. 숨길수 없는 하루를 담아내고 시간과 공간을 담아낸다.
그런 신발 앞에 서면 감정은 편안해진다.
내려 놓을수 있어서 일까
아이들에 신발엔 거짓이 없다.
흙묻은 신발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베어있다. 신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낼때 아이들이 웃음 소리도 덩달아 들려온다.
그럴때면 시간은 가던 걸음을 멈춰서서 방실 방실 미소 짓는다. 그 아름다운 시간은 제 자리에 서서 서성거리며 아이들의 표정 속으로, 이이들의 몸짓속으로 스며들어가 그렇게 잊혀지지 않은, 지워지지 않은 언어가 된다.
현관앞에 아무렇케나 벗어 놓은 흙묻은 신발 두켤레에는 아이들에 하루가 묻어있다.
오늘도 난 아이들의 흙묻은 신발을 툭툭 털어내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