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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Sep 19. 2024

긍정을 말하는

Day29 Camino de Santiago

 아침 하늘은 어제와 같이 찌푸리고 있었다. 짐을 챙기다 문득 누나가 "오늘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라고 했다. 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하루의 시작이지만, 그 말이 재미있는 일을 몰고 와줄 것만 같이 희망적이었다. 긍정을 말하는 사람과 여행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스페인의 날씨도 다이내믹했다. 점점 하늘이 개어오고 마을을 벗어나니 초록빛 숲이 모습을 드러내면 나는 육성으로 감탄한다. 아침에도 느지막이 일어났지만 늑장을 부려보자며 멋진 뷰가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은 10km 남짓되는 거리만 걷기로 하여 서두를 것이 없었다. 카페에 들어서니 사장님은 본인이 조금 뒤 나갈 거라고 했다. 다 마시면 컵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라며 얼마든 머물고 가라고 했다. 역시 안 되는 게 없지, 타이밍이 좋았다.


 누가 한 것인지 모를 낙서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다만 저 낙서를 하던 이들은 웃고 있었을 것 같고 누군가 그걸 보고 잠시나마 입꼬리를 올려보길 바랐을 것만 같다. 푸른 하늘아래 녹색은 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그 감정을 더 크게 느끼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말로 행복을 표현해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토르티야를 먹으며 걸었다. 오늘 먹은 그것은 감자의 지분이 너무 높았다. 누나는 감자만 먹는 것 같다며 잘게 썬 감자를 계란만으로 저렇게 붙여놓은 것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메뉴 델 디아를 주문해 보았다. 오늘의 메뉴정도로 볼 수 있을 듯한데,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다. 스타터로 파스타와 갈라시안 수프를 주문했다. 누나가 알베르게에서 만난 친구에게 추천받았다고 했다. 갈라시아 지방에 와서 스페인 친구가 추천해 준 갈라시안 수프, 흥미로웠다. 파스타는 평범한 토마토소스 파스타였다. 문제의 수프는 지푸라기 맛이 났다. 증조할머니가 사시는 시골집에 가면 창고에서 맡아볼 수 있는 향이 났다. 흥미로웠지만 맛까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여행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즐긴다. 고맙게도 누나와 그러한 성향이 비슷하다. 수프를 먹고서 그리 맛있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것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도전을 잘 즐길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온전히 즐겨본다.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 고맙다고 말했다.


 메인메뉴로는 치킨과 갈비를 주문했다. 특히 갈비 메뉴는 약간 매콤한 양념에 향채가 두드러졌다. 직원분께서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며 추천해 주셨다. 무난히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로는 산티아고 케이크를 골랐다. 아몬드 풍미가 있고 많이 달았다.


 부른 배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얼마 걷지 못하고 길에 멈춰 섰다. 열댓 마리쯤 되어 보이는 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두세 마리씩 수도로 가서 물을 마셨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한국에선 길에 나와있는 소를 보기조차 어렵지만 저리 줄지어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생경했다. 하루 낮을 온전히 밝혀내고서 산 능선 너머로 모습을 숨겨가는 해는 여전히 힘이 강했다.


 며칠 전 구매한 빗이 유독 마음에 들어 사진을 남긴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려 꼭 필요한 거 말곤 다 버려낸 마당에 빗을 구매했다. 그것을 소유하고 있음으로써 드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것은 분명 사치였다. 종종 사치가 주는 행복을 느낀다. 그 사치가 큰 재화를 소비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이 마음에 든다.


29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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