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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Apr 12. 2024

찌질한 남자(2)


창문에서 본 여자아이의 이름은 정소희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남동생 옆에 앉아서 손을 꼭 잡고 있다. 그 옆으로 이나가 서 있고, 반대편에는 같이 온 젊은 경찰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다. 의사가 다가온다. "정서준 아이의 몸을 검사해 보니 몸 이곳저곳에 멍이 심각합니다. 몇 일 입원하면서 치료받을 필요가 있어요. 진료 기록을 보니 2개월 전에는 팔이 골절 되어 찾아온 적이 있었네요.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었더라고요. 정소희 양에게 다 들었습니다. 정소희 양의 몸에서도 오래된 멍들이 발견되었고요. 아이들을 아버지라는 사람과 당장 분리시켜야 합니다."


이나와 젊은 경찰은 잠시 병원 밖으로 나가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의 엄마한테는 연락해 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연락을 받았는 데요. 아이들의 엄마는 6개월 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까 그 남자는 새아빠고요. 재혼한 지 2년 만에 사망한 거죠. 이후 6개월 간 아이들은 새아빠와 아슬아슬하게 생활한 걸로 보입니다."

"아..."


할 말을 잃었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 고통스러운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이나는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6개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슴이 저릿해온다.


"그럼 이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일단 아이들의 친아빠나 조부모, 친척들에게 연락을 취해보고 있으니 기다려 봐야죠."

"만약 연락이 닿지 않거나 아무도 데려가겠다고 하지 않는다면요?"

"그땐 보호시설이나 학대피해아동쉼터로 입소시켜야 할 것입니다. 일단 기다려 보죠. 근데 강이나 씨는 아이들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아니에요. 소희가 용감했던 거죠. 많이 무서웠을 텐데. 도움을 요청해 줘서 오히려 고마워요."


사실, 아이의 엄마가 죽기 전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부터 아동학대는 이미 시작됐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남자가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만 봤을 뿐이다. 아이들은 협박을 당한 것이다. 때린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지금 당장 죽을 거라면서. 남매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댁으로 가시겠습니까? 저는 이제 경찰서로 들어가 봐야 해서요. 가는 길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오늘 아이들 곁에 있으려고요. 먼저 들어가 보세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저도 내일 다시 들르겠습니다."


경찰은 돌아 걸어가며 생각한다.

아이들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보호자 노릇까지.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여자라고 생각했다. 용감하고 따뜻한. 뒤를 돌아본다. 이나가 병원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근데 대체 그 남자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제압한 거지?


아이들은 병실로 옮겨졌다.

소희를 보조침대에서 자도록 했고 이나는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본다. 자는 얼굴이 참으로 평온하다. 아까 본 아이의 등에 있던 시커멓고 거대한 멍들을 떠올리며 이내 고개를 돌린다. 창문 아래로 달빛이 고요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나는 아이들이 겪었을, 그리고 앞으로 겪어 나갈 시간들을 짐작해 본다. 겨우 8살, 10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죽음을 겪어낸 것도 모자라서 새아빠의 학대까지 겪어내야 했던 고통을. 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지독하지 않은가.


다음 날 오후. 경찰이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의 엄마에게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요. 오늘 아침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우시더라고요. 아이들을 자신이 데려가겠다며 오늘 바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현재 지방에 계셔서 저녁쯤에나 도착할 예정이고요."

"정말 다행이네요."

"네. 그렇죠."

"새아빠라는 사람은요? 어떻게 되는 거죠? 아이들을 다시 찾아오려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은 처벌을 받을 거고,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게 될 겁니다. 친권이 박탈당할 거니까요."


초저녁, 남매의 이모가 병원에 도착했다.

이나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나는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병원을 나왔다.


고통 속에서 울부짖었을 아이들의 마음은 누가 위로해 줄까. 아이들이 부디 잘 치유하며 이모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빌며 집으로 향했다.


이나의 집은 2층 단독주택이다.

엄마, 아빠, 이나, 남동생 그리고 삼촌. 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다.


"너 어디 갔다 이제 들어오니?"

엄마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본다. 아빠, 남동생, 삼촌의 시선도 느껴진다.


"그런 일이 좀 있었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다들 각자 할 일에 집중한다.


각자 할 일이란 '운동'이다. 거실 풍경만 바라보면 거의 헬스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매일 체력을 단련시킨다. 이나가 어릴 때부터 당연한 풍경이었다. 가족 모두가 운동선수이자 엄청난 싸움꾼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강한' 집안이다. 타고난 체형, 힘, 판단력, 기술도 모두 뛰어나다.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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