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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Apr 26. 2024

이기는 가족_살벌한 봄밤(2)


"여긴 지옥이야."


눈을 뜬 학생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살려줘서 고맙단 말이 먼저 아니냐?"

이한이 젖은 머리를 털며 말했다.

"지옥으로 다시 끌고 온 사람에게 감사? 당신이 뭘 알아? 내 삶은 그냥 지옥이라고!!!"

고성을 지르는 아이의 눈은 절규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마치 세상의 고통을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한 시도 이곳에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이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년의 찢어질 듯한 절규가 그의 마음을 후벼 팠다. 그는 학생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일을 잠시 미루고,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그냥 돌려보낼 순 없었다. 지금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준호와 수현이 같이 운영하는 카페로 장소를 이동했다. 수현이 남학생에게 따뜻한 레몬차를 건넸다. 준호는 그의 어깨 위에 담요를 덮어줬다.

"감사합니다."

달빛 같은 따뜻함을 느꼈던 걸까. 남학생의 눈빛이 어딘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그리곤 마주 앉은 수현과 이나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는 이한과 도혁이 앉아 있었다. 시선은 그쪽으로 두지 않았지만 귀는 쫑긋 세운 채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러했다.

소년의 이름은 민규.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그는 집에서는 학업 스트레스에 들볶이고, 학교에서는 학폭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이었다. 늘 100점만 외쳐대는 엄마. 늘 1등만 강요하는 엄마. 밥보다 공부가 우선이었고, 친구보다 공부였고, 놀기보다 공부였다. 그에게 자유는 없었다.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여야 했다. 꼭두각시 인형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반항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도 지금부터라도 엄마 인생을 사세요 제발. 모든 시간을 나한테만 투자하지 말고 좀! 저도 제 인생을 찾고 싶어요."

울면서 말했다. 아니, 빌면서 소리쳤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 발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새벽, 민규는 응급실에 가야만 했다. 엄마가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민규야. 내 인생은 바로 너야. 다시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말아 줘."


민규는 무서웠다. 엄마가 정말로 죽을까 봐.

그날 느꼈던 공포가 민규에게 뺄 수 없는 족쇄를 채웠다. 결코 도망칠 수 없는.


해외에서 일하는 민규의 아빠는 언제나 일뿐이었다.

민규의 성적이나 생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냉혈한이었다.


친구도 없었다. 공부에 방해가 될 때마다 그의 엄마가 나서서 그 친구들을 괴롭혔으니까. 민규에게서 떨어지라고. 너 때문에 민규 성적이 떨어지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며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하루는 민규가 학교에서 맞고 온 날이었다.

민규를 괴롭히는 그룹에 전교 2등이 대장격으로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1학년 내내 한 번도 민규를 성적으로 이기지 못했다. 자신이 1등을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민규의 비밀노트를 빌려달라고 협박을 했다. 싫다고 하자 학교 뒤 창고로 끌고 가 여럿이서 민규를 때리고 짓밟았다. 그리고 노트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다음 날 민규의 엄마는 학교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불같이 화를 내며 학교를 발칵 뒤집어엎었다. 괴롭힌 아이들을 전부 학폭으로 신고하는 일은 당연하고, 전교 2등인 학생을 찾아가 면전에서 온갖 모욕적인 언어를 퍼부었다.

"2등 주제에", "민규보다 못한 놈이", "양아치 같은 게"라는 언어들이 날아다녔다. 학우들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경험한 그는, 이후로 더 악랄하게 민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강제로 옷을 벗긴 채 동영상을 찍어댔고,

민규의 가방에 몰래 지렁이 58마리를 넣어두었으며,

상처가 남지 않게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기본적인 일상이었다.


그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도.

그 지독한 소외감은 그를 점점 세상 끝으로 몰아붙였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울고 있었다. 민규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도배되어 있었다. 세상에 미련 따위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삶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 깨달음이 반가워서 울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아파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이 기뻐서 더 울음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들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해졌다. 이 소중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세상이 갑자기 밉게 느껴졌다. 그들은 동시에 결심한다. 이 소년을 지옥으로부터 구해내겠다고.


수현은 민규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민규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모두 찾아가 상처 하나 내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차근차근 혼줄을 내주었다. 죄송하다며 싹싹 비는 아이들의 영상을 찍어 협박을 했다. 한 번만 더 민규를 괴롭히는 날에는 10만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이한의 SNS는 물론이고, 50만 팔로워를 보유한 핫한 유튜버이자 이한의 친구의 유튜브에 이 영상을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허세가 무기처럼 장착된 그들은 자신의 눈물콧물 범벅이가 된 지질한 영상이 전국적으로 퍼지는 선택은 하지 않으리라. 이후로는 정말로 민규에게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또, 민규가 엄마와 함께 상담을 받도록 도와주었다.

뛰어난 상담가는 민규가 처한 상황들을 잘 설명해 주며 민규의 진심을 끌어내게 해 주었다. 아들이 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심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딸깍. 오랫동안 꺼져 있던 전등에 불이 들어오듯이 정신이 차려졌다. 자신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찔했다. 민규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숨이 막혀올 것처럼 심장이 조여왔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무너진 댐처럼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민규는 말없이 엄마를 안아주었다.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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