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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Apr 19. 2024

잘못된 허세(1)


짙푸른 초저녁 하늘. 별 하나가 반짝거리고 있다.

이른 봄이라 그럴까. 아직은 제법 쌀쌀하다. 이나는 손을 재킷 속에 넣은 채 걸어가며 길옆으로 화사하게 피어 있는 노란 꽃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봄이 오니 곳곳에 생기가 넘치는구나. 왠지 올해는 어느 해보다 생명력 넘치는 한 해를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밀려온다.


작은 공원이 보인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너 명 모여 있는 것 같다. 어라? 담배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녀는 망설일 것도 없이 곧바로 그들에게로 향한다.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세 남학생에게 말한다.


"야."

그들은 뭐야,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당장 담배 꺼라."

건조하지만 단호한 말투다.


"신경 끄고 가시던 길이나 가세요. 퉤."

남학생 하나가 삐딱한 말투와 거만한 표정으로 말하더니 침을 툭 뱉는다. 이나는 셋 중 제일 센 놈이란 걸 금세 눈치챈다. 말없이 그 남학생 손에 들려 있는 담배꽁초를 빼앗아 바닥으로 내던진 뒤 발로 비벼 끈다.

"아이씨." 하며 가까이 오자, 가볍게 한 손을 뒤로 꺾고 나머지 한 손도 뒤로 세게 꺾는다. "아아악."


나머지 두 녀석이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니들 중학생이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중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걸로도 모자라서 아예 대놓고 피워?"

"이거 놔요 빨리!" 여자에게 너무나도 쉽게 제압당한 게 창피하지만 애써 쪽팔리지 않은 척 외쳐본다. 그 모습이 도리어 애처롭기만 하다. 이나는 아직 팔을 풀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잘했어, 잘못했어?"

이나의 힘과 심상치 않은 눈빛과 포스에 기가 눌렸을까. 겁먹은 나머지 두 녀석이 바로 대답한다. "잘못했어요."

이나는 잡고 있던 두 팔을 더 세게 꼬면서 묻는다. "너는?"

"..."

대답이 없자 더 아프게 비튼다. "아아악. 아파요!!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얼른 이것부터 풀어줘요!!"


그제야 꽉 잡고 있던 두 팔을 놓으며 말한다.

"니들, 여기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담배 피우다 나한테 걸리면 가만 안 둔다."

"네."

셋 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대답한다.

"자 이제 조용히 집으로 돌아간다. 실시."


그들은 잽싸게 가방을 챙겨 도망치듯 뛰어간다.

그 와중에 한 녀석은 꾸벅하고 이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든다. "그래. 잘 가."


.

.


며칠 후 이나네 집 거실. 다섯 명 모두 각자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헬스장을 방불케 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삼촌이다. 키 183cm에 100kg으로, 운동으로 단련한 크고 탄탄한 초콜릿 근육을 자랑하는 그가 바벨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다. 팔에 힘을 줄 때마다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40대 초반이지만 30대로 보이는 그는, 훤칠한 외모까지 갖춰 많은 여자들이 따른다. 하지만 아직 미혼이자 솔로다. 그의 주된 무대는, 그가 운영하는 킥복싱 체육관과 집이다. 운동이 제일 좋고, 조카들을 제일 사랑한다. 조카들과 함께 운동할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강이한. 그만하고 편의점 가서 컵라면이나 먹고 오자. 배고파."

이나가 케이블 머신을 내려놓으며 철봉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말한다.

"아까 고기를 그렇게 먹어놓고 배고프다고?"

"땀 흘렸잖아."

"그래, 가자 가."

이한이 철봉에서 내려오며 대답한다. 가족 중에 제일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지만 결코 삼촌에 뒤지지 않는 초콜릿 근육을 가지고 있다.


피식. 삼촌이 웃는다. 그는 늘 조카들 때문에 웃는다.

그들 때문에 살아간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버텨내기 어려운 삶이었을 것이다. 그에겐 어떤 과거가 있는 걸까.


편의점을 가던 두 남매 앞으로 남학생 한 명이 다급히 달려온다.

"엇, 쟤는..?"

며칠 전 공원에서 꾸벅하고 인사했던 그 중학생이다.

도움을 요청하려던 중에 이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는 애야?"

"아니 얼마 전에.."


"도와주세요!!!"

달려온 학생이 다급하게 말한다.

"무슨 일이야?"

"지훈이가 고등학교 형들에게 끌려가서 맞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어디야. 앞장서!!"

지훈? 친구를 말하는 건가? 아무튼 한 시가 급한 것 같아 더 묻지 않고 앞장서게 했다. 그 뒤를 이나와 이한이 따라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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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허세(2)'는 다음 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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