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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Apr 26. 2024

잘못된 허세(2)


퍽. 퍽. 퍽.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예요!" 성빈이 가리킨 곳은 어느 빌라 주차장이다.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 그림자가 여러 개 보인다.


어두운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니,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 여섯 명과 여학생 두 명이 있다. 바닥에는 중학생 하나가 쓰러져 있다. 그때 그 녀석, 지훈이다.


"니들은 뭐야?"

덩치 큰 녀석이 건방진 투로 묻는다.


"그건 알 거 없고. 고등학생 여럿이 몰려와서 중학생 하나를 때려눕히고, 이게 무슨 치사한 짓이냐?"

유치하다는 눈빛으로 이한이 말한다.

"시끄럽고. 당장 꺼져."

"싫은데?"

"이 새끼가 미쳤나!!!" 하면서 녀석이 달려든다. 날아오는 주먹을 거뜬히 피하면서 녀석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게 강타한다. 잠시 멈칫, 하는 분위기가 3초 흐르는 듯하더니 하나둘씩 덤벼든다.


퍽. 쿵. 콱. 퍽. 킥. 쾅. 픽. 탁.


고작 1분이 흘렀을까.

여학생들의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끝으로 싸움이 종료됐다. 이나와 이한이 남학생 6명을 너무나도 손쉽게 쓰러뜨린 것이다.


어느새 고등학생 8명은 이한이 시킨 대로 무릎 꿇고 앉은 채 손을 들고 있다. 이한은 그 모습을 휴대폰에 담는다. 다음에 또 저 애들을 괴롭힐 시엔 이 사진을 SNS에 퍼지게 확 뿌릴 거라며. 이렇게 하면 다시는 저 애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이 쪽팔리고 굴욕적인 사진이 세상에 공개되면 절대 안 되는, 허세로 살아가는 애들이니까.


"너. 괜찮아?"

이나가 지훈의 상태를 살피며 묻는다. 몸 곳곳이 피멍으로 얼룩져 있고, 이마가 많이 찢어져 피가 계속 흐르고 있다. 이나는 얼른 휴대폰을 열어 119에 전화해 경찰도 같이 불러달라고 말한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경찰과 구급대원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아니, 당신이 왜 여기에..?"

경찰 중 한 명이 흠칫 놀라며 말한다. 소희를 도와준 그날 만났던 그 젊은 경찰이다.


"자세한 건 애들한테 들으시죠." 이나는 지훈을 태운 구급차에 성빈과 함께 올라타며 말한다. "강이한. 뒤처리 부탁해."

"알았어. 얼른 가 봐."


상황을 얼추 파악한 젊은 경찰이 이한에게 묻는다.

"혹시 직업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학생입니다."

"아.. 그럼 누나 되시는 분은요?"

"도서관 사서입니다."

"네?"


경찰은 놀란 기색이다. 마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반전을 본 사람처럼. 도서관 사서라니. 적어도 당연히 운동선수이거나 깡패(?)일 줄 알았던 모양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나에 대한 궁금증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간다.


병원에서 지훈이 치료받는 동안 이나는 성빈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까 그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인데, 그들이 어떤 여학생 머리채를 잡고 골목으로 끌고 가는 걸 성빈과 지훈이 목격한 것이다. 그 여학생은 두 아이와 같은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얼핏 들어보니 그 누나들 중에 남친이 자신과 헤어지고 세아랑 만난다고 잔뜩 화가 나 있더라고요. 세아가 여우짓을 해서 자기가 까였다나 뭐라나. 그래서 지훈이 가서 구해줬어요. 세아는 도망가게 하고 자신이 대신 맞은 거예요."

"꼴에 남자라고. 그래서, 세아라는 아이는 집에 잘 갔고?"

"네. 친구를 통해서 물어봤는데 집이라고 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누나 아니었으면 지훈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이 정도로는 절대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진짜 무서운 형들이거든요."


정말이다. 이나와 이한이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지훈은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 고등학생들은 악질이었다. 타깃이 생기면 쫓아다니며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짓밟는다. 그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해서는 낄낄 거리며 돈을 요구하고 끝없이 괴롭힌다. 교묘하고 지독하게.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리는 것이다. 경찰서에 다녀온 이한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모두 사실이었다.


이틀 후. 지훈의 병실을 찾아온 성빈이 말한다.

"야. 집에 가자."

"..."

대답은 없고 한숨만 푹 내뱉는다.

"왜 그래?"

"엄마랑 연락이 아예 안 돼.."

"병원비 때문에 그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벌써 이나 누나가 냈으니까."

"뭐?"

"공짜 아니야. 나중에 알바해서 꼭 갚으래."

지훈의 얼굴에 미안함, 고마움, 부끄러움이 뒤섞인다.

세상에는 이런 어른도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사실 이틀 전에 이나는 성빈을 통해 지훈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지훈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지만, 거의 혼자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자주 집을 나가고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는 게 일쑤라고. 지금도 지훈의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해 보지만 받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자신이 병원비를 냈다.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기왕 도와줄 거라면 좀 더 확실하게 도와주는 게 그녀의 스타일이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 가족의 오랜 신념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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