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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Apr 05. 2024

이기는 가족_소란스러운 밤공기(1)


밤은 그들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어둠과 침묵으로 가득 채워진 늦은 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적만 흐른다. 은은한 달빛, 차갑고 청명한 밤공기, 고요로 뒤덮인 세상. 이나와 그녀의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고요 속에서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니까. 오늘처럼 각자 혹은 같이 밤 운동을 나온다.


툭.

적막을 깨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뭐지?

다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나는 즉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 골목 저 안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길바닥에 책이 떨어져 있다. '수학 3-1'라고 적혀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니 한 아이가 무언가를 들고 서 있다.


"도와주세요."

여자아이가 들고 있는 스케치북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공포와 간절함이 담긴 눈동자로 이나를 내려다보며. 그 눈은 절대 거짓일 리가 없었다. 그 뒤로 쿵쿵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아이가 있는 3층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쾅쾅쾅.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덩치가 큰 남자가 문을 벌컥 열며 소리 질렀다. 이나는 그를 가볍게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에 있는 방 문 뒤에 서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오빠를 살려주세요 제발."


다른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신 뭐야! 당신 뭐냐고!"

뒤에서 윽박지르는 남자의 목소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남학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였다.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소년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어느새 이나의 뒤로 바짝 다가온 남자가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으려 하자 빠르게 몸을 돌리며 돌려차기로 남자를 날려버렸다. 쿵. 남자가 벽에 부딪히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이씨.." 씩씩거리는 입과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남자는 당황했다. 젊은 여성의 발차기 한 방에 이렇게 나가떨어지다니. 자존심이 잔뜩 구겨진 그는 얼른 일어나 혼내주고 싶었으나 몸이 당최 말을 듣질 않는다. 당연하다. 일반 남성의 발차기보다 위력이 훨씬 강력하니까. 개의치 않고 그녀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언제 봤는지 부엌 식탁에 올려져 있던 고지서를 들고 주소를 말해주었다.

아이 상태가 나쁘니 119도 빨리 불러달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떨고 있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제 괜찮아." 이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아이는 소리 내어 울었다.


중년 경찰 한 명과 젊은 경찰 한 명,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구급대원들은 남학생을 들것으로 옮겨 내려갔다. 얼른 이동해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나도 따라서 내려갔다. 아이의 손을 잡고. 젊은 경찰은 곧 병원으로 조사를 위해 찾아갈 테니 아이와 함께 있어달라고 말한 후, 남자를 차에 태워 경찰서로 갔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정소희였다. 오빠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이름은 정서준이다. 서준은 배를 심하게 맞아 맹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나는 수술실 앞에서 소희와 함께 있었다. 어느새 소희는 이나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진 그녀는 수술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고통받는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반짝여도 모자랄 나이인데. 모든 것은 어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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