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이나는 아래로 떨어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재희의 목소리에 눈을 다시 떴다. 난간에 착 붙어 있는 아빠가 보였다. 그 뒤에는 재희가 있었다.
아빠를 부르며 준호의 곁으로 다가가 보니, 그가 할아버지의 발목을 꽉 잡고 있었다. 재희와 함께 할아버지를 위로 끌어올렸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실 때 소리가 나지 않게 조금씩 앞으로 다가갔던 덕분이다.
할아버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흐느낌에 잠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30년 가까이 아들의 도박빚을 갚아주고 있었다. 원래 두 개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지금 거주하고 있는 낡은 주택만이 남았다. 모아둔 돈도 다 가져갔고. 아들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죽음.
구치소에 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
그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주저앉아 후회의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3억의 도박빚이 있었다. 그 돈을 구할 길은 오로지 아버지의 건물뿐이라고 생각했다.
집을 팔아 3억은 빚을 갚고 3억은 자신에게 투자해 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동의하지 않자 그때부턴 술에 취할 때마다 폭력을 사용했다.
얼마 후 어르신이 준호가 일하는 카페로 다급히 찾아왔다. 도박장 놈들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남자가 감옥에 가면서 돈을 못 받을 상황에 놓이자 그의 숨겨진 아들을 찾아내 납치한 것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만났던 여자가 임신을 했고 남자 몰래 출산을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 아들 모르게 돈을 조금씩 보내주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 손자가 실종됐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 달라던 준호의 말이 떠올라 무작정 찾아왔다.
무릎을 꿇고 울면서 애원했다. 손자를 제발 찾아달라고. 꼭 좀 살려달라고. 자신을 살려준 것처럼.
이나네는 도박장 놈들의 짓일 거라고 확신했다. 이 또한 남보다 발달된 촉 덕분이다. 그 촉은 이번에도 정확했다. 도박장에 있던 몇 명을 혼내주고선 도박장을 샅샅이 살폈다. 이나는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를 하나 발견했다. 너무 어두워서 휴대폰 조명을 켠 채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해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게 무슨 냄새야. 견디기 어려운 역한 냄새에 토할 것만 같았다. 한쪽 구석에 비닐에 싸인 물체가 쌓여 있었다. 가까이 가보는데..
?!!!
사람의 손? 비닐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이 분명했다. 다른 비닐 안에도, 또 다른 비닐 안에도. 사람이 있었다. 아니. 시체가.
그때 갑자기 안쪽에 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이 나왔다. 키와 덩치가 어마무시했다. 도혁보다도 훨씬 컸다. 피 묻은 옷에 거대한 식칼까지 들고 있으니.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놈이 이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나가 날카로운 발차기를 날렸다. 몸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주먹과 발을 휘갈겼지만 작은 타격감만 입힐 뿐이다. 가만히 서서 맞기만 했다. 놈은 진작에 이나의 무기가 발차기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스피드로 따라잡기 어려울 듯하니 맞아주면서 한방을 노리고 있었다. 때를 보다가 이나가 발차기를 하던 순간에 칼을 휘둘렀다. 순식간이었다. 놈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이나의 다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나야!!!"
지하로 들어선 도혁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크게 분노했다. 부글부글 열기가 끓어오르는 채로 놈에게 매섭게 돌진했다. 두 사람의 몸이 엎치락뒤치락했다. 결국 도혁의 분노의 주먹에 나가떨어진 놈 위에 올라가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강타했다.
"삼촌 그만! 안쪽이 놈들의 작업장인 것 같아. 얼른 할아버지의 손자부터 찾아야 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도혁은 일어나 이나를 안아 들었다. 사실 그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지만. 말해봤자 소용없단 걸 아는 이나는, 가만히 있었다.
안에는 수술대로 보이는 침대가 4개가 있었다.
그 위에 사람이 누워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시체들이.
필요한 장기만 모두 빼 가고 나머지는 그대로 방치해 둔 모습이었다. 이중에 할아버지의 손자가 있으면 어쩌지. 이나는 불안했다. 그런데, 안쪽에 작은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같은 시각 위에는 어느새 또 다른 놈들이 몰려왔다.
족히 서른은 되어 보였다. 3대 30. 숨 쉴 틈도 없이 거친 싸움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싸움에 능한 자들이 더러 있어 다른 때보다 조금 더 힘이 들었다. 그중에는 칼잡이도 있었다. 놈이 뒤에서 수현을 향해 칼을 집어던졌다. 그 순간 준호가 빠르게 수현의 뒤로 달려가면서 그의 등에 칼이 꽂혔다.
"여보!!!"
"아빠!!!"
삼촌에게 안겨 올라온 이나가 소리쳤다. 옆에는 할아버지의 손자가 서 있었다. 이나는 삼촌에게 당장 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놈들을 무섭게 박살 내기 시작했다. 도혁까지 합류하면서 싸움은 빠르게 종료됐다.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까지 싸우는 거냐고.
대체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