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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n 20. 2023

3.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살든 사람 사는 모습은 다를 것 없을 것이다.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내 삶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경치 좋은 동네에 살았기에 산책을 자주 한 것과 취미로 수영을 한 것을 빼면. 당연히 당진에도 수영장 하나쯤은 있겠지 생각했다. 1999년의 당진엔 수영장도 없고 산책할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어디 좋은 데가 숨어있다 해도 버스를 의지해 다니는 뚜벅이 신세 인데다 당진을 잘 알지도 못하니 갈만한 곳도 몰랐다. 걸어서 5분 안에 바다와 호수, 버스로 5분 안에 수영장이 있는 동네에 살던 내게 이 도시는 실망만 안겼다.   

  

차 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병원은 오래된 근대 가옥으로 2층 건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도시 개발이 시작되고 난개발 구역인 읍내동 주변의 터미널과 관공서가 번듯하게 건물을 짓고 이사했다. 도심에 아파트들이 생기면서 주변에 빌딩들도 새로 들어섰다. 그로 인한 여파인지 지금은 그때 병원이던 건물이 흔적도 없이 헐렸다. 대신 번잡했던 일방통행 길에 공용주차장이 들어섰다.  

    

병원에서 200여 미터 아래로 군청, 경찰서가 차례대로 있었다. 위로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남산이 있고, 거기 그나마 오르막 한 공원이 있었다. 지금은 스포츠센터와 시립도서관과 깔끔한 카페까지 들어선 남산엔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포장집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딱히 술을 즐기지도 않는 데다 술잔을 함께 기울여줄 친구도 없으니 포장집에 들어설 일도 없었다. 어쩌다 일을 마치고 갈 수 있다고 해도 어둑해진 밤길을 젊은 여자 혼자 다니기에는 무리였다.  

    

당진 옛사진전 2005년 당진경찰서

우리 실장님은 항상 30분 일찍 퇴근했고, 아이 엄마인 동료 여선생님은 집에 가는 버스 시간 때문에 10분 먼저 나갔다.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뒤처리와 청소는 나의 몫이 되었다. 퇴근 10여 분 전에도 방문하는 환자를 거절 못 해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괜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친구도 떠나고 애인도 없으니 만날 사람도 없었으니까.  

   

직장 생활은 그런대로 익숙해져 갔지만, 퇴근 후 찾아오는 무료함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는 텅 빈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고향에서 혼자인 것은 선택이었지만, 이 곳에서는 필수가 되었다. 시간은 외롭게 가고 있었고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녘에 잠이 깨면 문득 옛날 일들이 생각났다. 고향 친구 생각도 나고, 자취방을 두 어 달 공유했던 선배 언니가 담배를 피우던 모습도 떠올랐다.

 ‘담배나 한번 피워봐?’    

 



방 안에 쪼그리고 앉아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이 동네는 막차가 대부분 9시 전에 끊기는 것 같았고, 장보기, 병원 진료, 은행과 관공서 업무가 아니면 쇼핑할 곳도 변변치 않았다. 조금만 늦어도 가장 번화가였던 그 동네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빼꼼히 문을 열고 사주경계를 하며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누가 볼세라 잰걸음으로 병원 앞 골목에 들어서자 길 건너에 불 켜진 편의점이 보였다. 관심도 없는 음료수 진열장과 라면 매대를 둘러보는 척하다 과자 봉지를 몇 개 집었고 담배를 하나 샀다. 국산담배를 사는 게 촌스럽게 느껴져서 말보르로 샀다. 영화 ‘비트’에서 정우성이 피웠다는 그 유명한 담배.  

   

사진: Unsplash의Radek Skrzypczak

담배가 든 까만 봉지를 들고 뛰어서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빨대로 음료 빨아들이듯 뻐끔거리며 입 담배를 피웠다. 고소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게 이런 맛이구나’ 서울 언니처럼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후 마셔보았다. 순간, 핑그르르 머리가 돌더니 순식간에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다. 앉은 채로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다 옆으로 쓰러졌다.  천장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닥이 꿀렁대며 물결치듯 움직였다. 과연 돛대 위에 누운 사람 같았다. 심심해서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두어 달쯤 되자 턱턱 숨길을 막았고 곧 죽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토요일이면 교회에서 청년들의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대화가 들려왔다. 찬송이 울려 퍼지는 노을 지는 저녁쯤엔 교회에 가고 싶기도 했다. 예배가 없는 날로 골라 빈 예배당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낯선 사람들 틈에 껴 울 용기는 없어서였다. 병원 바로 뒤에 교회가 있었지만 정작 주일에는 꿈나라에 가서 놀기 바빠 주님을 배반하고 교회에 가지 못했다.  

  

그냥도 예쁜 20대. 나는 유행하는 립스틱을 바르고 예쁜 옷을 몸에 꼭 맞게 입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금방 마음이 풀렸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다. 갓 만든 반찬을 가지러 집에도 가고 서울로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쇼핑하고 영화도 보러 다녔다. 시집 한 권쯤 끼고 거리를 거닐다 예쁜 편지지를 만나면 편지를 썼다. 을씨년스러운 방을 환하게 밝혀주던 노란 화분 속 파란 식물을 아침 햇살 아래 놓아주고 친구처럼 환하게 어르신들을 맞았다. 그렇게 외로움도 이겨가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좋은 일은 쉬이 잊어버렸고, 나쁜 일은 오래 기억했기 때문에 행복한 줄 몰랐지만, 그때를 지나는 내 젊음은 아름다웠다. 살아감이 진흙 뻘밭에 발이 푹 빠지듯 힘들게 느껴져 울다가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 기대했다. 흙수저 물고 태어나 아픈 거 많이 보고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 나는 방황도 길고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는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실수해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이 넘쳤다.  

    

젊음은 힘이 세다. 젊을 땐 돌이킬 수 없는 어제에 후회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갈망하기에 오늘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 속에 살지만, 삶은 기회로 가득한 보물섬이었고 좋은 날이 오리란 부픈 꿈으로 넘실댔으니까.


사진: Unsplash의Radek Skrzypcz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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