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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Mar 22. 2024

이런 티켓은 처음이라서

세상엔 의도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기막힌 일들이 있다.




보통의 경우 티켓(Ticket)하면 콘서트나 영화 또는 스포츠 경기 같은 주로 어느 곳을 들어가려고 할 때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해 주최 측에서 발행하고 우리는 그 자격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을 말할 테다.


그런데 그것 말고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의 교통티켓(Traffic Ticket)이라는 것이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서두르다 과속을 하거나 분명 노란불이었는데 갑자기 빨간불로 바뀌면서 본의 아니게 신호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때 법(法)(???)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들이 갖고 있는 딱지라는 심오한 뜻을 갖고 있는 쪽지더미 위에 뭔가를 끄적끄적 한 다음 그것을 쭉 찢어 건네주면서 벌을 주려는 자와 이를 거부하고 싶어 하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를 도로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그야말로 불공정(不公正)하게 티켓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퇴근을 하고 와서는 열이 잔뜩 올라 씩씩거리면서 화를 낸다.


평소와 다름없이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뒤에서 조명등이 반짝이듯 번쩍번쩍거리고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따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자기인 줄도 모르고 비켜가라고 옆으로 빠져주면서까지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계속 따라붙으며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주길래 분명 규정 속도로 달렸고 어떤 교통 법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왜?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세웠다고 했다.


먹잇감을 잡은 낚시꾼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어차피 잡은 물고기니까...

기껏 세워놓고는 왜 세웠는지 설명이 필요한 남편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꾸물거리다 한참만에 나타난 사람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약간의 군기가 들어간 투로 자신의 통성명을 하고는 "번호판이 더럽다"라고 했다고 한다.


뭐라고요?

과속을 한 것도 아니고 신호위반을 한 것도 아니고 고작 번호판이 더럽다는 하찮은 이유로 멀쩡히 잘 가고 있는 차를 잡았다고?

어이상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도로 위에 널브러져 누운 채 얼어붙어있던 눈들이 녹아 물이 되면서 눈과 물이 뒤섞여 처럼 변해 버린다.


꿀꿀이 죽처럼 흙들과 마구 뒤섞여 지저분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눈 죽들은 마치 도로 위에 드럼통으로 실어다 이쁘게 뿌려놓기라도 한 듯 바퀴선을 따라 줄 마쳐 길게 늘어져 있곤 한다. 


이 때문에 질퍽해진 도로를 달릴라 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지나가는 차들이 튀겨대는 흙탕물에 차가 엉망이 되기 일쑤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그것에 대해 아무도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나도 똑같이 다른 차들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그런 이치로 본다면 번호판이 더러워진 차는 분명 남편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게다가 번호판이 더러우면 닦으라고 하면 되지 티켓까지 발부한다고?

"이게 말이 돼? 태어나서 나 그런 말 처음 들어봐 정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 뚜껑이 열려버린 남편은 "저기 다른 차들은 나보다 더 더럽고 요즘 날씨 탓에 번호판뿐만 아니라 차가 더러워지는 일은 특별한 일도 아닐 텐데 무슨 일이냐? 고 하면서 따지듯이 말하니 "주변에 세차장이 널려있다"고 되받아치며 충고하듯이 말하더란다.


그러는 순간에도 번호판이 더러워 아예 숫자들이 보이지도 않는 차들이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가고 기회를 잡은 남편이 "그럼 왜 저 차들은 안 잡냐?" 했더니 이번엔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는 스님처럼 묵묵부답... 

그럼 그렇지!~ 할 말이 있을 리가!~

기가 막혀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많은 차들 중에 하필 별로 더럽지도 않은 남편의 차가 타깃이 된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심정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그렇다고 힘없는 평범한 시민이 팔뚝에 차고 있는 두꺼운 완장(腕章)의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려는 자와 붙어서 싸운 들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할 수 없이 티켓 받고 돌아온 남편은 성이 날 대로 나 있었다.


다행히 이곳은 병 주고 약 주는지 신문고의 북처럼 법원에 가서 원통함을 호소해 볼 수 있는 "contest a ticket"이라는 제도가 있다.  


티켓을 받고 나면 3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금을 낸다.

두 번째는 교통법원에 가서 검사에게 이의제기(異議提起)를 해본다.

세 번째는 최종 재판까지 간다.


첫째는 부당한 처사에 대한 반발로 할 수 없고 셋째는 증거자료도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무엇보다 승리를 해야만 하는 부담도 있다.

그런 이유들로 보통은 두 번째를 선택한다.


법원(court)이라고는 부르지만 본 재판으로 가기 전에 약식재판의 개념으로 검사와 마주 앉아 티켓 받은 상황을 설명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이의제기를 하면 검사가 이야기를 듣고 그렇다 또는 인정한다는 판단이 들면 벌금을 줄여주는 제도이다.


대신에 이 또한 내 시간을 버려가면서 까지 일부러 가야 하는 일이라 귀찮은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면 되고 운 좋으면 빨리 끝날 수도 있으니까 포기할 수 없던 남편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억울함을 어필하고 싶어 그곳으로 가 그들의 잘못된 만행을 이르듯이 검사에게 차곡차곡 설명을 하고 이를 듣자마자 두말도 안 하고 금액을 반으로 낮춰 주어 바로 그 자리에서 지불하고 왔다고 한다.


이미 발부된 티켓에 대해 그나마 호소한 탓에 반값으로 줄어든 벌금을 지불하면서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뒤도 돌아보기 싫어 그 자리에서 지불까지 모두 마치고 끝냈지만 자신이 겪은 일이 분한 남편이 그 일에 대해 주변의 캐나다인들에게 이 경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으니 하나같이 경고를 줄 수는 있어도 번호판 더러운 일로 티켓까지 끊는 일은 없는데 이상하다고 했다고 한다.


억울하게 당한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혹시 이런 경우도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 아는 지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더니 해마다 자동차 등록세를 내면 연도가 표시되어 있는 스티커를 번호판에 붙여야 하는데 그곳이 더러우면 세금을 냈는지 안 냈는지 식별을 할 수 없으니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도 "티켓은 아니다"라고 한다.


"이건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캐나다인으로서 캐나다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와서 살고 있으니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건가?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쓰고 시간 쓰고 반값도 아까운 돈까지 지불했으니 억장이 무너진다.

게다가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우산도 없이 비바람을 막아내고 있는 것 같은 자책으로 한없이 씁쓸해진다.





언젠가 아들이 일단 포커스를 인종차별에 맞추고 모든 일을 그쪽으로 몰고 가면 그렇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곱씹어 보고 둘러봐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야말로 죄 없이 당한 일이라는 생각만 드니 억울하고 답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인종차별로 끌로 가면 안 된다는 뜻인 듯하다.


멋진 제복을 입고 휘황찬란한 완장을 두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사람이라 때로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반면에 그러면 안 되지만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일처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길 바래본다.


실제로 남편에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과태료를 물게 한 것도 실수였는 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괜히 사그라들지 않는 분함 때문에 인종차별이니 어쩌니 하면서 스스로를 더 억울한 쪽으로 몰고 갈 필요도 없는 듯하다.


그냥 크고 작은 세상만사 중 하나이려니 그리고 모르고 지나면 평생 몰랐을 일들이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이런 일들을 굳이 겪어냄으로써 원하든 아니든 알게 되면 또 하나의 굳은살이 우리 몸 아니면 마음 어딘가에 "딱" 하고 박히게 되면서 우리를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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