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랑사 15화

O - 대상포진

‘아.’

by 최동준


대상포진을 겪어본 뒤로 한동안 내 몸의 따가움에 예민해진 적이 있었다. 뾰족한 무엇으로 내 피부 속을 깊숙이 찌르는 감각.


나는 언젠가 ‘사랑은 당하는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듯이, 의도된 칼날에 찔리는 듯이. 누군가를 정하곤 ‘저 사람을 이제 좋아해야지!’하고 결심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나에겐 당신이 그랬다. 좋아하려 하지도 않았는데도 어느새 하루 종일 당신으로 지배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터였지? 언제 내가 당했지?’ 혼란스러워하기엔 이미 곪아버린 후였다.


언젠가 너는 참 아픈 말을 했었다. 자기는 누구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다고. 정말 조금의 무엇도 없었냐는 둥 애써 말을 붙여 봐도, 내가 당신께 당한 사람임은 모르는 듯했다. 그날 저녁의 나는 으으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음을 기억한다.


날카로운 무엇을 보면 종종 당신이 떠오른다. ‘그래, 당신이 했던 말엔 이런 날붙이 같은 것도 있었지.’하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날갯죽지 언저리쯤에 따끔함을 느꼈다. 아, 그건 한 번 걸리면 재발하기 쉽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당신에게 참 많이도 당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듯이, 의도된 칼날에 찔리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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