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랑사 16화

P - 레고

나는 당신 꿈을 꾸는 게 좋아요.

by 최동준


꿈속에서 우린 경사가 참 높은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게 어찌나 가파른지 발이 미끄러질 때면, 앞서가던 당신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어요. 이상하게도 당신의 손은 아무런 감촉이 없었고요. 그래서 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나 봐요.


거기는 동네 전체가 보이는 벤치쯤이었어요. 낮고 빨간 노을이 당신의 눈동자를 부셨고, 그런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죠. 무슨 할 말이 있었는지, 무슨 말을 기다리는지 나를 한참이나 오랫동안 말이에요. 벌겋게 타오르는 적갈 빛 눈동자, 고개를 반쯤 숙여서 드러난 목선, 발이 닿지 않는지 개구쟁이 마냥 다리를 흔들었어요. 그러다 나는 무언가 버티지 못해서 그만 깨어버렸고요.


어릴 적 나는 일부러 작은 레고 조각을 쥐고 잤어요. 그 시절 나는 그것을 좋아했고 꿈에도 나올까 싶어서요. 꿈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느새 그게 침대 밑이나 내 등 뒤에 있어서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꼭 쥐고 꿈나라로 데려가질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아직도 당신이 떠오르는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들어요. 꿈에서라도 마주칠까 싶어서요. 당신을 보지 못하고 깨어날 때면 나는 등 뒤의 레고 조각처럼 꼭 쥐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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