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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분더 Jan 04. 2024

2023 지난 일 년에 제목을 붙여본다면?








관계에 관하여

어느 순간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의미 없는 관계 속에서 지루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로 눈을 뜨면 영혼 없는 대화 말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을 나섰고 작년은 만남만으로도 벅찬 한 해를 보냈다. 이승희 마케터, 융 마케터, 문구소녀 마케터, 응원대장 올리부 상무님, 작가님으로써의 요조, 임경선 작가님, 김신지 작가님, 룬아 작가님, 레디투킥 양수현 사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연말에는 네잎크로버같은 다비다님도 알게되었다. 만남의 기회가 생기면 찾아갔고직접 뵐 때마다 이분들을 영상과 글로 만날 때보다 더 크게 나의 내일이 달라지는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친해지고 싶고 닮아가고 싶은 분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 집에서 밖으로, 우리나라에서 세계로, 더 나아가 지구밖 우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관계망들이 펼쳐지는 희열이 있었다. 비록 먼발치에서의 만남이었지만 같은 공기 안에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는 것은, 이 분들이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고 듣고 느낀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만 전해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만나볼 수 조차 없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은 언제라도 결국 연결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이라이트

1월에는 처음으로 나 홀로 외박을 하며 자부타임을 보냈고 결혼 경력이 쌓여가는 만큼 보지 못했던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 냉장고 문을 열고 마실 수 있는 물처럼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곁의 모든 사람들은 알고 보면 모래바람 같은 고단한 삶을 걷고 또 걷다가 어느 날 행운처럼 나타다 사막 같은 인생에 오아시스처럼 존귀했다. 그리고 같은 달 아이는 등하교 완전 독립을 선언하며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컨테이너 박스만큼이나 무거운 짐이었던 국기원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3년은 족히 걸릴 치아교정도 시작했다. 예민한 성격에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주 잘 적응했다. 이놈에 노파심은 육아경력이 쌓여가도 사그라들 줄을 모르니 정말 큰일이다. 뜨거운 여름에는 서귀포 가족여행을 했고 슈퍼문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그리고 12월, 대망의 관면혼배식을 마치며 세상에 없다고 믿었던 기적을 믿게 되었다. 몇 가지 도전도 있었다. 좋아하는 기록으로 <기록회>를 열었고 몇몇에게는 작은 노하우도 전했다. 북클럽 클럽장으로 지원하기도 했으며 소소한 수확도 얻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점심과 커피를 사 먹고 난생처음 주식으로 수익을 내기도 했다(주린이의 수익이란 손해만 안 봐도 수익이라 생각한다). 그 밖에인터뷰 제안으로 두 번의 인터뷰이 경험을 했고 글씨 쓰기 대회에 참여 제안을 받고 입상을 하기도 했다. 불꺼진 방 같았던 1년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구석구석 환한 불빛이 스며있었다.


자주 느낀 감정

자주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부러움이었다. 오죽하면 <나 인터뷰> 매거진 1화부터 등장했겠는가. 그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슬쩍 클릭해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짜증은 올해만 유독 자주 느낀 감정이라기보다는 타고난 성격 같다. 생각해 보면 집안 내력 같기도 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도 민감한 감수성을 결정하는 유전자 메커니즘이 있다고 발표했다. 어쩐지. 한집에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한집에서 살 때의기억은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다. 때문에 내 안의 짜증주의보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불안이 높다. 혼자일 땐 여행을 가거나 친구를 만나면서 불안도가 높아지기 전에 나름대로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지만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순간이 많아졌다. 너무 소중한 것이 생기면 겁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자주 느끼는 불안은 어느 순간 화로 변질되었다. 불안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그 감정이 올까 봐 두려워 분노로 표출하고 마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아이에게 화내는일이 많았는데 소중한 만큼 겁내고 두려워하지 않고 단단해지고 싶다. 그다음으로는 미안함을 자주 느꼈다. 양가 부모님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이나 생신날 내가 드렸던 용돈보다 더 많은 용돈을 갈 때마다 손자에게 주셨고 나에게는 두 손 가득 밑반찬과 먹을거리를 주셨다. 부모님께 받는 사랑은 항상 복리 이자처럼 불어나 갚아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작년은 여느 해와 달리 실망감이 자주 찾아왔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을 때,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을 때, 처음과 끝이 다른 모습을보았을 때. 실망감을 느낄 때마다 나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가 언제였는지 곱씹어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열한 감정들보다는 희미하지만 평온한 날들도 많았다. 남편이아이를 데리고 2박 3일 여행을 갔을 때, 아이도 남편도 없는 한낮의 거실, 책과 노래, 커피와 냄새, 아침의 모닝페이지, 어두운 밤 주황 불빛 아래 펼쳐진 노트와 글씨 쓰는 소리를 들을때 편안했다. 가끔씩 설렘도 찾아왔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을 하는 요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날 밤, 초밥을 먹을 때, 여행계획을 짤 때, 좋은 꿈을 꾸었을 때, 잘 밤에 번뜩이는 생각들이 뭔 가 될 것만 같을 때.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삶 전체를 돌아보는 과정과도같아서 나는 늘 나의 감정에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다.


기억에 남는 콘텐츠

처음으로 넷플릭스 <도시인처럼>이 떠오른다. 내가 그토록 세계여행을 꿈꾸는 이유를 깨닫게 해 준 영상이기도 했다. 즐겨본 드라마는 대행사, 일타스캔들, 신성한 이혼, 종이달, 무인도의 디바가 좋았다. 때때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 <종이달>에 나오는 '모든 제자리가 제일 좋아'라는 대사를 떠올린다. 영화는 <미시즈해리스 파리에 가다>, 디즈니 시리즈 <무빙>을 보고 위안을 얻었다. 예능으로는 텐트 밖은 유럽, 콩콩팥팥, 유퀴즈온더블록, 어쩌다 사장 3, 태어난김에 세계일주를 즐겨보았다. 유튜브는 채널십오야, 나영석의 나불나불, 신동엽의 짠한 형, 가장 최근에는 신동엽과 이소라의 재회! 슈퍼마켓 소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열하고 보니 나는 참 시간이 많은 사람 같다.


깨달은 순간들

사람들은 대게 비슷한 연유로 울고 웃으며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들에 좀 더 나은 미래가 달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주장하는 사람 말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한 해였고 돌밥돌밥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번갈아가면서 찾아오지만 언제나무슨 수가 생기고 그것들로부터 나는 결국 희망을 얻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한 해 여러 가지의 리추얼들을 도전해 보면서 이런 행위들의 이유는 다름 아닌 보통의 나날로 빨리 돌아오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슬프고 우울하고 화나는 순간이 찾아와도 여느 날과 똑같은 리추얼을 행하면서 보통의 날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성공의 유무는 외부자원이 아니라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언제나 보석이었다는 것. 나의 노파심과 두려움을 갈고닦을수록 더욱 빛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별 거 없는 한 해였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끝이 없어서 이만 줄인다.

마지막으로 지난 일 년의 제목은 <밤에 켜진 불빛>이라고 하고싶다. 캄캄한 밤인 줄 알았는데 언제나 전부 보일 만큼 환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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