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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Oct 06. 2021

북한 의사의 자녀교육법

 글 뒤주가 되지 마라!

나의 어머니는 의사였다. 의사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인 것은 남이나 북이나 비슷한 것 같다. 특히 윗동네에서 의사는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군에 속한다. 왜냐하면 지역마다 병원 수가 적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병원은 각 도마다 도병원 하나, 시 병원 하나, 구병원 하나씩 있고 도시와 떨어진 시골에는 군 단위 군 병원과 진료소가 각각 있다. 이 외에 군부대병원과 대학병원이 각각 하나씩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는 구역병원(구역은 남한의 행정구를 뜻함) 소아과 전문의로 30년 넘게 근무하셨다(여기로 치면 각 구에 있는 대표 병원인 셈이다.  당시 북한에서 정년은 남성이 60세, 여성이 55세였지만 당에서 교사와 의사는 정년연령과 상관없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장기 근무를 허락했다.).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구역병원에서 소아과 과장으로 계셨으니 어머니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존경심도 높았고 나는 어려서부터 이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성장했다.


대학 진학률이 상위 10퍼센트 정도인 윗동네에서 아버지는 공학자이셨고 어머니는 의사이시고 삼촌이나 고모, 이모, 이모부들 대부분이 대학교수나 의사들이었고 심지어 올케언니마저도 연구원이다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학구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것 같다. 어머니는 2남 4녀 중 맏이셨는데 작은 이모와 큰 이모 모두 내과의사, 큰 이모부도 과의사셨다는~~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가정인 셈이다.

사진] 어머님이 김정일 생일날 당직 서며 찍으신 사진입니다. 93'년이니 어머님께서 56세 때네요.


1남 2녀 중 막둥이었던 나는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컸다. 하지만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둥이와는 조금은 다르게 자란다는 것을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알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 언니는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지만 어머니의 사랑법은 조금 엄했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10살도 되기 전에 일련의 생활규칙을 요구하셨는데 예를 들면, 아침은 무조건 6시 기상, 동네 어르신이나 아는 지인들에게 늘 인사를 잘하기, 책을 읽으면 주인공을 본받기 등등이었다.

기상 전쟁

10살도 안된 어린 내가 날마다 6시에 기상한다는  쉽지 않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도 짐작하실 거다. 어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큰 성공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는 말씀이지만...

아침마다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려는 나와 깨우려는 어머니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곤 했다. 내가 일찍 일어나서 뭘 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면 어머니는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아파트 주위를 몇 바퀴씩 달리든지, 쓰레기를 버리든지 뭐라도 하라는 거였다. 그때 어머니의 노력으로 지금도 나는 아무리 새벽에 잠을 들어도 아침에는 제시간에 기상하곤 한다. 지금도  아침시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비비고 하품하면서 겨우 기상한 얼굴의 초등학생 들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서 잠깐씩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인사예절

동네 사람들이나 부모님의 지인 혹은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면 무조건 90도 인사를 하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된 것도 어머니의 교육 덕분이었다. 고향사람들 속에 소아과 과장 선생님의 막내딸이 인사성 밝기로 소문난 것은 어느덧 당연한 일로 되어버렸다. 지금도 나는 인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일상의 당연한 것 같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 기본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인사할 때 대상을 절대 가리지 않으며 살아왔다. 중국에서 힘든 불법체류생활을 할 때에도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 자주 찾던 구두수선 아저씨에게 이제는 내가 당분간 못 볼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작별인사도 하고 늘 오고 가며 박스나 공병 같은 재활쓰레기를 주어 가는 아주머니에게도 인사를 잊지 않고 건네곤 했다.


어쩌면 길고 힘들었던 중국에서 보낸 여러해동안 공안에 한 두번 불려간 적은 있었으나 험한 일 안 겪고, 북송되지도 않고, 무사히 풀려나올 수 있었던 것도 주변 사람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산 덕일지도 모른다.



'글뒤주'가 되지 마라!

나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 이미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을 자주 다녔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는 걸어서 10~15분 거리였다.  어머니가 당직을 서는 날이면 막내인 나를 등에 업고 밤길을 걸었었는데 오고 가는 길에서 등에 업힌 나에게 주몽 전설이나 정몽주의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던 이야기, 고려장이라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어머니를 잘 모신 이효자의 전설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그렇게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독서와 친해졌다.  그때는 아직 어리다 보니 집에 있는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그 범위가 다양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도 읽고 허준의「동의보감」도 읽었으며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혁명적 내용으로 가득한 장편소설들과 세계문학선집과 각국의 민화집, 이규보작품집, 등 과도하리만치 독서에 빠져들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내가 책을 보면 어머니는 공부하라고 책을 뺏으며 화를 내시는 일이 번번해졌다.


때는 80년대, 아버지께서 과학자이시라 우리 집에는 「과학의 세계」라는 월간잡지가 매월 배송되어왔는데 지금도 충격을 받았던 내용이 생각난다. 독자들은 북한 사회가 폐쇄적이라 외부 소식을 아주 못 받을 거라 예상하겠지만 당간부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받는 외부 뉴스들이 있긴 하다.

나는 「과학의 세계」를 통하여 미국에는 60넘은 할아버지도 컴퓨터를 배운다는 소식이나 앞으로 21세기가 되면 기술이 발달해서 텔레비전이 달력처럼 벽에 걸릴 수 있다는 등등의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단순한 독서가 아닌 책 속의 주인공처럼 실천할 것을 요구하셨다. 글뒤주 - 다시 말해서 백면서생(白面書生)이 되지 말라는 거였다. 예컨대  내가 다니엘 디포(D. Defoe)의 「로빈슨 쿠르소」를 읽는 걸 보시고는  사람이 게으르면 로빈슨처럼 살아남을 수 없다 하시고,  「큐리 부인」 읽는 모습을 보시면 왜 큐리처럼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서 책은 읽어 뭐하냐고 하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요구가 높음에 부담을 느낄만했으나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늘 책 속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갔다.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테스」를 읽으면서 미래의 남편에게 절대 과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베리 슈트라우스(Barry Strauss)의「스파르타쿠스」을 읽으면서 인간의 강인함과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을 깨달아가면서 청소년기를 책 속에 묻혀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도 나는 탈북하기 전까지 독서를 즐겼고 10권 읽으면 10번 다 독후감을 쓰곤 했다.


훗날 탈북 후 중국에서도 습관처럼 책을 읽었다. 2007년 한국에 와서 처음 읽은 도서가 한국사 1,2권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써지기에 남한의 한국사를 가장 먼저 선택했다.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길들여진 독서습관이 결국은  길고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나를 러시아 문학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정착 초기에는 이 사회를 파악하려고 신문과 여러 도서들을 탐독했는데 정작 지금은 먹고사는 게 해결되어 그런지 독서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에는 인문학 강의를 할 때나 어학 과외를 할 때 수강생들이나 학생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를 보니 역시나 책 보다 유혹이 많은 세상살이에 조금씩 길들여져 가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불안감마저 든다.


추석을 맞으니 꿈속에서 어머니를 뵈었다. 나는 늘 어머니의 선견 지명하신 교육법이 지금의 나를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지금은 팔순을 훨씬 넘기신 고향의 어머님이 너무나 그립다.


※표지 사진 출처] 얀덱스https://yandex.com/images/search?cbir_id=2273385%2FBixdl9MD6t_6egoMdt8OUg8231&pos=0&rpt=imageview&img_url=https%3A%2F%2Ffarm4.static.flickr.com%2F3333%2F4625900689_0c3d1172f8_o.jpg&lr=114233&cbir_page=similar&url=https%3A%2F%2Favatars.mds.yandex.net%2Fget-images-cbir%2F2273385%2FBixdl9MD6t_6egoMdt8OUg8231%2For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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