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뒤주가 되지 마라!
어머니는 내가 10살도 되기 전에 일련의 생활규칙을 요구하셨는데 예를 들면, 아침은 무조건 6시 기상, 동네 어르신이나 아는 지인들에게 늘 인사를 잘하기, 책을 읽으면 주인공을 본받기 등등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단순한 독서가 아닌 책 속의 주인공처럼 실천할 것을 요구하셨다. 글뒤주 - 다시 말해서 백면서생(白面書生)이 되지 말라는 거였다. 예컨대 내가 다니엘 디포(D. Defoe)의 「로빈슨 쿠르소」를 읽는 걸 보시고는 사람이 게으르면 로빈슨처럼 살아남을 수 없다 하시고, 「큐리 부인」 읽는 모습을 보시면 왜 큐리처럼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서 책은 읽어 뭐하냐고 하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요구가 높음에 부담을 느낄만했으나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늘 책 속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갔다.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테스」를 읽으면서 미래의 남편에게 절대 과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베리 슈트라우스(Barry Strauss)의「스파르타쿠스」을 읽으면서 인간의 강인함과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을 깨달아가면서 청소년기를 책 속에 묻혀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