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의 내가 27세의 나에게 쓰는 편지
20년 후 미래의 내가 이 순간을
어떻게 온몸으로 느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차에서 뛰어내려
마치 20년 만에 처음 보는 것처럼
딸 피비를 껴안았다.
오, 이게 내 인생이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 운이 좋았어?
이렇게 관점을 바꾸니 동네와 거리가 다르게 보였다.
내가 경험한 것에 경건함을 느꼈다.
그리고 거룩한 땅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30대 성인이다.
만약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5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미래의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미래의 나를 현재로 불러와
살아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퓨쳐 셀프, 벤저민 하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연희동에 살았었는데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항상 내가 어려워했던 친구 사귀기에도 문제가 없었고 학교생활도 나름 즐거웠다. (그때 당시 착한 친구들만 주변에 있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양아치가 없었고 왕따를 시키는 문화도 없었다.) 등굣길에 커다란 빵집에서 나는 빵내음을 맡으며 등교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빵내음이 기억이 난다니. 참 평화로웠던 시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과 매주 주말마다 근처에 있는 안산에 놀러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같이 쑥을 캐서 전을 부쳐먹고, 진달래를 따먹어보기도 하고, 살구나무를 매실로 착각해 주워 먹기도 했다. 가끔씩 아빠가 해주시는 냄비에 한가득 담긴 떡볶이도 너무 맛있었다. 갑자기 도어록이 고장이 난 탓에 가스관을 타고 올라가서 창문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 주셨던 아빠가 슈퍼맨 같았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행복한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내 인생에서 사소하지만 순수한 행복이 제일 가득했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연희동에 가게 되면 예전 생각이 나면서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예전 등하굣길에 서서 꼭 그 길에 영험한 기운이 맴도는 듯 신기해하며 조심스레 걸어보기도 했다. 17년이 지나 27세가 된 내가 10세 때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란 이렇다. 소중하고 신기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내가 만약 27세의 지금 이 마음으로 10세의 내가 된다면 내 주위를 둘러싼 행복에 신이 나 춤이라도 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빠짐없이 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 같다. 그때 당시 나를 괴롭히던 하등 보잘것없는 걱정들에 코웃음 칠 것 같다. (3-6학년의 걱정은 이런 것이다. 우리 집은 왜 친구들 집에 비해 평수가 작을까. 수학은 왜 어려울까. 나는 왜 인기가 없을까.) 나열하고 보니 다시금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지금의 내 업무를, 공부를, 운동을, 집안일을, 소비를 기타 등등 모든 것을 40세가 되어서 다시 한다고 생각한다면? 40세의 본인아 너는 어떻게 27세의 지금 상황을 살아가겠니? 내게 조언을 좀 해주지 않겠니? 40세의 내가 27세의 내게 쓰는 편지다.
안녕 민형아,
너는 벌써 40세가 되었어.
13년의 세월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온 것 같아.
하지만 그 세월을 막 흘려보낸 것은 아니야.
왜냐면 넌 지금 작가가 되어있거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너는 네가 바라던 것들의 실상이 되어있어.
그러니 한 번 너 자신을 믿어보길 바라.
27세의 넌 어떤 길이 정답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열심히 해나가고 있지?
너는 인생을 정말 모조리 글에 쏟아붓고 있어.
남들이 봤을 땐 불확실한 미래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너에겐 확실한 믿음이 있어.
너는 이미 40세의 네 모습을 보고 있잖아.
너는 지금 커다란 책장에 네가 쓴 책들을 꽂아 놓고
그 앞 책상에 앉아 네게 편지를 쓰고 있어.
그럼 마저 27세의 네게 하고 싶은
2가지 조언을 말해보고 떠나려 해.
먼저 27세의 네가 10세로 돌아간다면
느꼈을 감정을 지금 다시 느껴보길 바라.
모든 일을 13년 만에 다시 해본다고 생각해 봐.
모든 일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거야.
미래의 너라면 어떻게 살았을지를 생각해 봐.
미래의 네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려봐.
모든 정신을 미래에 고정시키고 확신을 가지고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봤으면 해.
그리고 회사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좋겠어.
너는 지금 작가가 된 나머지
회사생활을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하거든.
먼저 웃으면서 일해!
한숨 푹푹 쉬고 짜증을 내어봤자 해결되는 것도 없고
네 기분만 안 좋아지니까.
그냥 너는 항상 기분이 좋다고 세뇌하며 살았으면 해.
그럼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한 하루가 될 거야.
그리고 네 일이 아니더라도
보도자료나 규정 들을 빠짐없이 찬찬히 읽어봤으면 좋겠어.
어차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하게 될 것도 아니니까.
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웬만하면 아는척하지 말아!
네가 어련히 잘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사적인 대화나 또는 지나가는 말로 네가 모르는 말을 할 때도 가볍게 흘려듣지 말고 물어봤으면 좋겠어.
생각보다 일은 정해진 규격과 경로로
정답을 주는 게 아니더라고.
그래서 모르는 상황을 창피해하지 말고 물어보면
네가 더 빠른 시간 내에 일을 잘하게 될 거야.
13년의 시간이 다시 네게 주어진 걸
진심으로 축하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