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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치우는 사람들

by 이대발

흰 눈이 새의 깃털처럼 춤추며 천천히 땅으로 땅으로 내려앉는다. 이불속 솜처럼 두툼하게 쌓였다. 나무 가지마다 솜사탕 같은 눈꽃이 활짝 피었다. 홍제천 폭포에는 고드름 열매가 열렸다.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심조심이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집 앞 골목과 가게 앞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눈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주민센터, 구청 공무원들은 염화칼슘을 뿌리며 제설작업이 한창이다.


갈빗집 주방장 아저씨, 팔순을 넘긴 반찬가게 아주머니, 병원 앞 경비 아저씨,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 커피집 앞 아주머니까지 빗자루와 밀개를 들고 땀을 훔친다. 모두 행복해 보인다.


집 앞 골목부터 마을 버스정류장까지 눈을 길 옆으로 치웠다. 거리가 깨끗하다. 숨이 차 오르고, 속옷이 땀에 젖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전혀 힘이 들지가 않다. 가족과 이웃을 위한 일이어서일까? 이 모든 풍경들이 정겹다.


주변에 공동체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다. 어딘가에는 여전히 이런 이웃들이 많다. 어르신과 어린이 돌봄, 복지관, 문화센터 곳곳에서 서로 나누고,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솜털 같던 눈이 싸리 눈으로 바뀌었다. 눈길을 걷는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든다. 온 세상이 아름답다. 나도 예쁘고, 지나는 사람들도 예쁘다. 하얀 눈처럼 내 마음도, 이웃도, 세상도 더 맑고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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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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