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를 씨름으로 쓰려뜨린 씨름꾼 이야기
공주님들,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볼래요? 지금부터 100년전 쯤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네 증조부의 젊은 시절 얘기야. 그때 네 증조 할아버지는 힘이 장사였어. 함자는 때시에 봄춘자를 써서 시춘 이었어. 네 증조부는 나락 두섬을 지고 깨금발(외발)로 스무보를 걸을 정도였어. 또 씨름도 곧잘해서 읍내 씨름대회에 나가서는 더러 상도 탔어. 그런데 이방 양반(이름은 김개동인데, 사람들은 개똥이라고 불렀어)과 붙으면 항상 졌어. 그래도 두사람은 아주 친한 친구야. 장에 가면 둘이서 막걸리를 얼마나 마시는지, 먹고는 가도 지고는 못갈 정도의 양을 마시곤 했어.
그날 두사람이 막걸리를 두말 쯤 마셨을 때였어. 그런데 대수(증조부의 큰아들)의 동네친구들이 술집에 찾아 왔어.
"가동 어르신(할머니가 가동마을에서 시집와서 택호가 된 거야)! 대수가 소 먹이러 가서 동무들과 망개싸움을 하다가 다리를 댕강 분질렀어요."
증조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친구! 나 먼저 가네."
대수는 증조할아버지가 결혼한지 5년만에 얻은 아들이라 무척 애지중지했어.
"자네는 친구보다 자식이 더 소중하다는 거야. 예끼, 몹쓸사람."
증조부가 떠나고, 이방양반은 기분이 상했어. 이방양반은 이방마을에서 시집온 아내 덕에 얻은 택호인데, 아내는 시집온지 3년만에 돌림병에 걸려 죽고 혼자 살고 있었어.
"거, 똥술이나 해먹이면 뼈가 붙는데.. 저리 유난을 떠네. 아지매! 막걸리 한말 더 주소."
개동씨(이동양반을 지금부터 개동씨라고 할게)는 술을 혼자서 벌컥 벌컥 마시는데, 술친구가 없으니 술맛이 나지 않았어. 그래도 억지로 다 마셨는 걸. 날은 이미 어두워져서 개동씨는 터덜 터덜 10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었어.
가장골(사람이 죽으면 가매장하는 곳) 어귀에 이르렀을 때, 개동씨는 똥이 마려워서 무덤가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았어. 끙끙거리며 똥을 누고 나니, 졸음이 몰려 오는 거야. 길가 풀밭에 누웠는데, 총총한 별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거렸어. 집에 가면 반길 사람도 없으니,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어. 그런데 너무 깊이 잠이 든 거야. 새벽에 몸이 으슬 으슬 추워서 깨었는데, 날씨가 흐려져서 주위가 깜깜한 거야. 술기운에 추운 줄을 몰랐는데, 술이 깨니 한기를 느낀 거지.
개동씨는 옷을 추스리고 집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어. 그런데 해치골(도깨비불을 해치라고 했음)에 이르렀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앞에서 부스럭 기척이 나는 거야.
"네가 사람이면 나타나고, 귀신이면 물렀거라!"
개동씨는 겁이 났지만 크게 소리를 질렀어. 그런데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검은 물체가 나타난 거야.
"니가 씨름 잘한다는 개동이구나. 나는 해치골을 지키는 도깨비장사다. 우리 둘이서 씨름을 해서 네가 나를 이기면 보내주고, 내가 너를 이기면 너는 오늘밤에 저승길을 떠나는 거야. 흐흐흐흐"
도깨비는 개동씨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하얀 샅바를 개동씨에게 던져 주었어. 개동씨는 오른쪽 다리에 샅바를 매고 심호흡을 하는데, 도깨비는 왼쪽다리에 매듭을 끼고 검은 샅바를 매고 있는거야. 둘이 샅바를 맞잡고 앉았다가 팽팽하게 당기면서 일어서서 둘이 마주 섰어. 개똥이는 이미 호흡이 거칠어지고, 땀도 났어. 개동이가 먼저 배지기를 하려고 도깨비를 뽑아 드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거야. 다시 오른발 덧걸이를 하려는데, 도깨비는 살짝 발을 뺐어. 오른발 오금당기기를 해도, 안다리후리기를 해도 기술이 들어가지 않았어. 2시간을 지나니 새벽이 되는지 으스름하게 주위가 밝아오는 거야. 개동씨는 힘이 다 빠져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어. 그때 도깨비가 뒤집기를 하려고 몸을 숙이고 파고 드는데.."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는 순간, 친구 시춘이와 씨름을 하면서 나눴던 말이 생각났어.
"왼씨름은 술수야. 왼쪽으로 들어오면 왼쪽으로 후려쳐."
개동씨가 힘에 부쳐 중심을 잃는 순간에 도깨비에게 왼쪽 후려치기를 했어. 도깨비는 힘없이 먼저 쓰러졌어. 그 순간 개동씨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짐승 등으로 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호신용 짧은 칼)로 도깨비의 가슴 한가운데를 찔렀어. 그러고는 도깨비를 뿌리치고 부리나케 동네를 향해 달렸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인 된 채로 시춘이(증조부)집 대문에서 소리를 질렀어.
"친구, 날세. 밤에 오다가 해치골에서 도깨비에게 붙잡혀 밤새 씨름을 했네. 내가 그놈의 가슴을 단도로 찔렀는데, 아침에 찾아봐 주게."
증조할아버지는 개동씨에게 꿀물을 타서 먹였어. 그러고는 사랑방에 눕혀서 잠을 재웠어. 아침이 밝자 증조 할아버지는 개동씨가 말한 해치골을 찾았어. 그런데 죽은 소나무 주위를 뺑뺑 돈 흔적이 있고, 나무의 왼쪽 가지 가운데에 개동씨의 단도가 꽂혀 있는 거야. 증조할아버지가 개동씨에게 '나무에 단도가 꽂혀 있더라'는 말을 과연 했을까요?
ㅎㅎ.. 지금도 김개동 할아버지가 도깨비를 씨름으로 이겼다는 이야기는 우리마을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어.
그러니 공주님들, 쉿! 절대 비밀이야! 여러분들도 비밀을 지켜주세요!
♧ 적고 나서: 아직 손녀들이 어려서 어른동화로 분류했습니다. 택호, 단도, 씨름 용어들, 두루마기, 상투, 해치(도깨비 불), 가장골 등등.. 설명해야 할 용어들이 많지만 최대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조금 어려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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