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터는 잔디에게서 시원한 수박 향
신축 빌라 단지 내 공원이 아니고
공원 안 빌라 단지
우리 동네 공원은
지구보다 살짝 작다
무한대가 될 수 있었는데
지구가 좋아서 그만두었대
닿으려면 닳아야지
구름의 채찍질
스스로 작아지려 해
흩어지는 먹색
범람하는 청색
쨍쨍한 태양은
인공조명을 혐오한다
공원의 둘레는 원형
닮으려면 담아야 해
제가 수집한 지구인을 보세요
무료 전시 휴관일 없음
지구인이 공원을 공전합니다
대지를 때리는 군홧발 소리
일정한 리듬 어긋나는 방향
개와 사람을 치지 않습니다
청량한 바람에
모자가 날아간다
흙먼지 터는 잔디에게서
시원한 수박 향
공 때리는 노인의 손에서
은은한 휘발유 냄새
발자국들이 모여서 만든 땅
아래층에서 민원이 올라온다
“뛰지 마, 네가 이 우주의 중심이야.” *
영원히 잘 거라던 사람들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김영하 장편소설『너의 목소리가 들려』, 문학동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