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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n 29. 2024

우리가 열두 살 때

불 꺼진 거실이 자꾸 심장을 깨물어서 키가 자라지 않았어




우리가 열두 살 때

현관 열쇠를 목에 걸고 다녔는데. 돌아갈 집이 없었다. 불 꺼진 거실이 자꾸 심장을 깨물어서 키가 자라지 않았어.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들도 하나 둘 퇴근하는 시간. 투명한 잠자리처럼 운동장을 맴돌다가 사육장으로 올라갔다. 토끼에게 토끼풀을 먹였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 화를 냈어. 너희도 잘못했지? 선생님한테 말하면 안 돼. 갈색 코트가 종이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


우리는 아니 나는 악을 쓰며 계단을 뛰어내려온다. 미친 애처럼. 언덕을 뛰어 내려가서 교문 밖으로 몸을 던진다. 그때 문은 차원을 연다. 나는 초대받은 적 없는. 현실의 차도는 좁고 차는 크다. 큰 차가 눈을 번쩍거리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내 품으로 오는데 귀신 보듯 와. 화가 난 나는 텀블링해서 인도로 올라오고. 물구나무로 집에 갔다가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고.



근데 엄마 일찍 오셨네요.

가게를 빼기로 했다.

그럼

다른 자리에 또 내야지. 근데 넌 왜 우니?

종아리가 아파서요.

그러게 제대로 걸어 다녀야지.



우리가 열두 살 때

토요일 밤마다 괴담 프로로 세상이 떠들썩했고, 손바닥만 한 유머집에는 웃으며 죽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입이 귀까지 찢어진 여자가 유행이었는데. 그 여자처럼 될까 봐 입을 다물고 다녔지.


나 혼자 안방에서 자면 전화벨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엄마인 줄 알고 받으면 사육장에서 만난 남자가 말한다. 집에 혼자 있니? 너 엄마랑 둘이 사니? 거칠어지는 숨소리, 긴 침묵, 들리지 않는 뚜- 뚜- 소리. 그날 일기에 100번 쓰고 잔 글자. 제발 전화 좀 끊어주시면 안 돼요?


열두 시가 되어가자 식칼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변기에 앉아서 옆을 보면 거울이 있다.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배우자의 얼굴이 나타난다고 너는 말했어. 나는 칼을 입에 물고 거울 속의 나를 보며 기다렸다. 나타나기를. 배우자와 같이 있는 나. 늙은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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