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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6화 (3000자.)

by 잉크 뭉치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그 사이, 둘째 큰아빠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떠드는 거야?”



“뭐라고?”



“나는 없는 살림에도 최소한 입원비는 꾸준히 냈어. 근데 너는? 엄마한테 쥐꼬리만한 용돈 주고, 입원비 책임 다한 척하냐?”


첫째 큰아빠가 이를 악물었다

“너 오늘 아주 제대로 나왔구나.”


“아니, 이제야 제대로 말하지. 너는 입만 열면 가족 생각하는 척하지만,

아버지 생전 호강이라도 시켜드렸냐?

엄마 팔순 여행 때 한 푼이라도 보탰냐고?

상철이랑 나랑만 보탰지.”


둘째 큰아빠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더는 참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을 태우듯 말했다.



해외영행이라도 보내드렸으면 말을 안해.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추궁하는 거야?


결국에는 아버지 살리겠다고 하면서 이번에도 남에게 넘길 거면서."



그의 말은 쌓여온 모든 불만이 터져 나오듯, 어린아이처럼 점차 과거의 기억들로 떠밀려 갔다.



'이 말을 마치면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그는 자신도 유치하다고 느끼면서 억울했던 순간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학까지 가라고 돈도 보탰지. 나는 가고 싶어도 기술을 배워야 했고, 그렇게 겨우 대학을 갔더니 이 모양이냐?"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둘째는 지금 이렇게 소리치는 자신이 초라했다.

한때는 사업이 잘 풀려 부모님께 호강도 시켜 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형과 동생의 눈에, 그저 민폐 덩어리였다.



아무리 형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도,

속이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


“아버지를 그만 이제 쉬게 해드리자.”


그 말을 내뱉었던 순간이 메아리쳤다.


그때 적절한 시기에 사업을 접었더라면,

코로나 19가 오기 전, 파산신청이라도 했었더라면.



빌리지 않고, 돈이 있었다면.

숨 쉴 틈이라도 있었다면.



아버지를 살릴 순 없었어도,

이토록 추하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더 이상, 대화에서는 어른스러움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아마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것보다는, 누군가 먼저 주먹이라도 날리면 그때 빠져나가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몰랐다.




그 순간.



“됐다! ”



할머니의 한 마디에 모든 소리가 멈췄다.



“영감도 많이 힘들었으끼다! 이제 그만 쉬도록 보내 주자.”



첫째 큰아빠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할머니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문아!”



첫째 큰아빠가 움찔했다.



“아무리 동생이 못나도, 그렇게 입을 놀려도 되나?”

둘째가 고개를 뛸궜다.



"그래도 둘째가 뒤에서 얼마나 노력하는데! 너는 한 번이라도 동생 입장에서 생각해 봤나?"



첫째 큰아빠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내가 몇십 년을 죽어라 일해서 집에 돈을 갖다 바쳤는데, 결국 이래야 해?"





할머니가 말없이 눈을 피하자,

그는 다시금 쓴웃음을 흘렸다.



“내가 엄마한테 손 벌려본 적 한 번이라도 있어?”하며 손가락으로 둘째 큰아빠를 가리켰다.



“근데 저 새끼는?!”



첫째 큰아빠는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둘째는 늘 자신을 ‘아픈 손가락’으로 포장하며, 사업을 빌미로 엄마에게 뻔뻔하게 손을 벌렸다.


그 모습이 싫었다.


그래도 참았다.


가족이니까.


실상은 둘째를 더 챙겨줬음에도,

첫째는 어머니가 중요한 순간만큼은 자신의 편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병상에 눕고부터 가족의 실권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책임과 기대를 떠안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 병실에서 느껴지는 건 배신감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남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릴걸. 편하게 손을 내밀거나, 둘째처럼 뻔뻔하게 굴었더라면 어땠을까.



방금 대화로 깨달았다.



이 모든 상황은 원인을 말이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없는 돈 쥐어짜서 입원비는 꾸준히 못 내더라도 엄마에게 용돈을 드렸다.



하지만 액수가 문제였다.



그래, 결국 난 돈이 없어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거야.

입으로는 둘째를 욕했다.



하지만, 적어도 녀석은 사업을 한 번 성공시켜

내 반년 치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여행비로 쓸 수 있었고,



내 용돈의 몇 배를 엄마에게 줬고,

가끔은 병원비도 전부 부담했다.



그러니 가족 내 실세를 잡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점에서 초라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은연중에 자신을 무시하는 둘째의 말투와 행동.


"내가 뭐가 잘났다고, 겨우 이런 걸로 화를 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버지를 살리고 죽이는 결정권조차 비굴하게 동생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엄마도 둘째에게 받은 돈과 지원이 있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걔가 더 예뻐 보이겠지.


그는 생각했다.



대학도 가기 싫었지만, 장남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의 기대를 떠안고 떠밀려 갔다.


모든 가족이 그의 성공을 바랐다. 반대로 동생은 돈을 벌어야 했다.


"얼른 성공해서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안에 내 뜻은 없었다.


자립할 무렵이면, 부모는 그와 동생을 나란히 세워 놓고 말했다.



"너는 대학까지 보내고, 우리 모두가 고생해서 밀어줬는데, 대학도 못 나온 둘째보다 못 벌면 어떡하냐?"

그렇게 가족들 앞에서 자신을 깎아내렸다.


"장난하냐?"


"너희가 멋대로 기대하고 밀어붙였으면서."


"내가 억지로 버텨온 세월이 얼만데."



그래도 가족이니까.



늘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하며 참아왔다.



그러나, 그 순간.


억울했다.



"나는 효자는 아니었지만, 불효자도 아니었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동생이 했던 말이 맞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 효자 노릇은 못 할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터는 얻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쥐겠다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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