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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직장의신2 02화

당신도 모르게 가입된 조직, '우리는'의 정체

가난이 만든 행동강령, 그리고 탈퇴 선언

by 한금택

아버지는 늘 “우리는~” 으로 시작하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아버지 생일을 맞아 큰 맘먹고 소고기집으로 예약을 했다. 아버지는 “우리는 이런데 보다는 그냥 삼겹살집이 더 좋아” 하신다. 여름 옷 한 벌 사드려도 늘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이런 옷 안 입는다, 그냥 편한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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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도대체 그 우리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버지의 평생동안 매 상황 마다 말씀하시는 우리는 어떻 어떠해야 한다는 말씀을 종합해 유추해 본다.

가난하면서,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겸손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 을 우리라 칭하시는 것 같다. 그 우리에 아버지가 가입하고 계신 것이다. 그 추상적 집단에 스스로 가입하시고 평생 그 모임에 적을 두고 계신다. 아버지는 평생 우리는~ 모임의 행동강령을 지키시느라 입버릇처럼 “우리는 그런 거 안 해!” 하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그 우리라는 조직에 대해 단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속한 조직은 정체성이 확고하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조직은 아버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 조직은 단 한번에 만들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회생활을 막노동판에서 처음 시작하셨을 때, 작업반장의 비명 같은 주의 한마디가 그 우리~ 조직의 강령 한줄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근면성실 함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온 국민이 각성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행동강령 한 줄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트라우마를 한줄 두줄 가슴에 새기셨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세계이고 살아가는 최고의 방책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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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가. 내가 정의라고 규정한 것들. 내가 양보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움켜잡고 있는 정의와 옳음에 대한 생각들. 나의 삶속에서 경험하고 충격받은 트라우마에 기인한 한문장, 한문장들 일 뿐 아닐까? 내가 부여잡고 있는 과거의 매뉴얼과 이미 철지 난 정의와 바름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것들은 현재와 잘 맞지 않고 덜그럭 거린다. 그럼에도 그 행동강령들을 움켜쥐고 놓지 않고 있다.


더 무서운 일은 나의 트라우마일 뿐인 행동강령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상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행동강령 중 “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새벽 5시면 눈이 번쩍 떠진다!” 는 말씀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새벽에 늘 일어나 뭔가를 해왔다. 누가 시킨 것도 나의 강력한 의지도 아니다. 어느새 나는 그 우리~ 조직에 가입되어 있고 새벽5시면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나도 그 우리~ 조직의 일원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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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과거에 남겨 두어야 한다. 그때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론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몸으로 해결했지만, 지금은 AI 가 해결한다. 대부분의 이론이 뒤집어지고 변형됐다. 변화된 세상에서 과거의 행동강령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행동강령으로 나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사실 나는 나일 뿐 우리~ 조직의 일원이 아니다. 누구도 가입을 강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조직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인이 되고, 회사에 다니며 모두 마음속에 우리는~ 조직에 나도 모르게 가입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 우리~ 라는 조직의 강령 때문에 포기한 수많은 도전들을 생각해 본다. 해외파견 옵션이 나에게 왔을 때, 우리는 김치먹고 살아야 한다며 굳이 사양했다. 더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매수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과욕 부리면 안된다며 변두리 아파트에 만족했다. 그 우리는~ 때문에 나는 너무 많은 기회를 외면 했다. 만일 그 우리는~ 이라는 조직이 실제 한다면, 그 본사에 쳐들어가 문이라도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나의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부모처럼 나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 선 안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내 삶의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을 구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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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도 나는 우리는~ 조직의 본점에서 내 이름을 파내고 왔다. 이제 나는 그 우리는~ 조직의 강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지도를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현재 방식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조직 탈퇴는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런 무시무시한 조직은 존재 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 조직에 가입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삶의 성취는 과거에 있지 않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 보다는 더 유연하고 여유 있는 마음과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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