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만든 행동강령, 그리고 탈퇴 선언
아버지는 늘 “우리는~” 으로 시작하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아버지 생일을 맞아 큰 맘먹고 소고기집으로 예약을 했다. 아버지는 “우리는 이런데 보다는 그냥 삼겹살집이 더 좋아” 하신다. 여름 옷 한 벌 사드려도 늘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이런 옷 안 입는다, 그냥 편한 게 좋아”
궁금하다. 도대체 그 우리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버지의 평생동안 매 상황 마다 말씀하시는 우리는 어떻 어떠해야 한다는 말씀을 종합해 유추해 본다.
가난하면서,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겸손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 을 우리라 칭하시는 것 같다. 그 우리에 아버지가 가입하고 계신 것이다. 그 추상적 집단에 스스로 가입하시고 평생 그 모임에 적을 두고 계신다. 아버지는 평생 우리는~ 모임의 행동강령을 지키시느라 입버릇처럼 “우리는 그런 거 안 해!” 하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그 우리라는 조직에 대해 단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속한 조직은 정체성이 확고하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조직은 아버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 조직은 단 한번에 만들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회생활을 막노동판에서 처음 시작하셨을 때, 작업반장의 비명 같은 주의 한마디가 그 우리~ 조직의 강령 한줄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근면성실 함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온 국민이 각성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행동강령 한 줄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트라우마를 한줄 두줄 가슴에 새기셨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세계이고 살아가는 최고의 방책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내가 정의라고 규정한 것들. 내가 양보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움켜잡고 있는 정의와 옳음에 대한 생각들. 나의 삶속에서 경험하고 충격받은 트라우마에 기인한 한문장, 한문장들 일 뿐 아닐까? 내가 부여잡고 있는 과거의 매뉴얼과 이미 철지 난 정의와 바름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것들은 현재와 잘 맞지 않고 덜그럭 거린다. 그럼에도 그 행동강령들을 움켜쥐고 놓지 않고 있다.
더 무서운 일은 나의 트라우마일 뿐인 행동강령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상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행동강령 중 “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새벽 5시면 눈이 번쩍 떠진다!” 는 말씀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새벽에 늘 일어나 뭔가를 해왔다. 누가 시킨 것도 나의 강력한 의지도 아니다. 어느새 나는 그 우리~ 조직에 가입되어 있고 새벽5시면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나도 그 우리~ 조직의 일원이었던 거다.
과거는 과거에 남겨 두어야 한다. 그때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론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시대에는 모든 것을 몸으로 해결했지만, 지금은 AI 가 해결한다. 대부분의 이론이 뒤집어지고 변형됐다. 변화된 세상에서 과거의 행동강령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행동강령으로 나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사실 나는 나일 뿐 우리~ 조직의 일원이 아니다. 누구도 가입을 강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조직 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인이 되고, 회사에 다니며 모두 마음속에 우리는~ 조직에 나도 모르게 가입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 우리~ 라는 조직의 강령 때문에 포기한 수많은 도전들을 생각해 본다. 해외파견 옵션이 나에게 왔을 때, 우리는 김치먹고 살아야 한다며 굳이 사양했다. 더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매수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과욕 부리면 안된다며 변두리 아파트에 만족했다. 그 우리는~ 때문에 나는 너무 많은 기회를 외면 했다. 만일 그 우리는~ 이라는 조직이 실제 한다면, 그 본사에 쳐들어가 문이라도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나의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부모처럼 나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 선 안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내 삶의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을 구속한다.
오늘이라도 나는 우리는~ 조직의 본점에서 내 이름을 파내고 왔다. 이제 나는 그 우리는~ 조직의 강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지도를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현재 방식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조직 탈퇴는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런 무시무시한 조직은 존재 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 조직에 가입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삶의 성취는 과거에 있지 않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 보다는 더 유연하고 여유 있는 마음과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