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Yes를 멈춘 이유: 팀을 위한 No의 선택
“절대 회사에서 적을 만들지 말라” 입사해서 선배에게 들었던 첫 충고다.
조직안에 적을 만들면 중요한 순간에 치명적인 공격을 받는다. 업무는 조직 내 그 누구와 도 연결된다. 적이 생기면 나 모르는 사이 모략에 빠질 수 있다.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 수동적인 훼방을 놓는다. 나의 모든 업무적 공적이 적들에 의해 폄하되고 ,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든다.
선배의 충고 대로, 나는 사내에서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Yes” 맨이 되었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도 부탁하면 들어 줬다.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도 혼신을 다해 노력했다. 상대에게 도움이 되어주면 최소한 그는 내 등에 칼을 꼽지는 않았다. 살기 위해서 Yes 맨이 되었다. 어떻게든 야근을 빨리 끝내려고 저녁을 거르고 일에 열중하다가 부장님이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면 주저 없이 “Yes” 했다. 거기서 끝이면 진정한 Yes 맨이 아니다. 이사님이 거나하게 술 드시고 사무실에 들러 야근하는 직원들을 치하(?) 하기 위해 저녁을 사준다고 하시면 1초내에 “Yes” 라고 따라나선다. 호구 아닌가?
누군가 내 등 뒤에 칼을 꽂는 상상은 끔찍했다. 사실 사원 대리는 너무 하찮아서 누군가의 적이 될 깜조차 되지 않는다. 과대망상증이 심했던 나는 누군가 나를 음해할까, 뒤에서 나를 손가락질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업무시간을 보냈다. 적을 만들어 칼을 맞느니, 차라리 일을 택했다.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가 원하면 무슨 일이든 내일 처럼 도왔다. 정수기 물통을 누구보다 빨리 갈았다. 그 일이 아무리 하찮은 일이어도 자존심 따위는 챙기지 않았다. 그 일이 내 능력에 과분해도 묵묵히 밤을 세우고, 따로 돈을 들여 학원에 다니며 조용히 보고서를 만들어 보냈다. 고객사 PT 장표에 들어갈 통계표가 필요하면 유료사이트에서 내 돈을 내고 구매해서 제공 했다.
점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졌다. 뛰어다닌 만큼 적은 없었다. 한두명씩 후배가 생기고 내가 이끄는 팀이 커졌다. 어느 날 후배가 퇴사하면서 팀장님은 후배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하소연을 듣고 알았다.
Yes 맨이 주변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내가 양보하면 나 혼자 희생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 그 에너지 만큼 내 팀은 손해다. 부서 대 부서로 양보해서 끌어온 허접하고 성과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모든 팀원을 고통스럽게 했다. 내 몸에 칼빵 맞지 않으려고 끌어 안은 일들이 내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칼빵이 된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Yes 맨은 스스로 싸움닭으로 바뀌었다. 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가차 없이 거부 했다. 내가 그를 돕지 않으면 그는 적으로 돌아 설 것을 뻔히 알면서 도움을 거부했다. 점점 더 많은 칼빵을 맞았다. 내 팀을 위해서는 “No” 가 맞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칼빵을 피하려고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흉내를 내는 순간 그 청구서는 모두 나를 포함한 가까운 동료가 부담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No” 맨이 되었다. No 의 정도와 크기에 따라 상대가 나의 등에 칼을 꽂을지, 옆구리에 꽂을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내 팀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프로젝트를 가져왔다. 조금만 애써도 경영진의 눈에 띠는 설탕프로젝트만 수행했다. 가장 효율적인 일만 했다. 하찮은 일은 하지 않았다. 평가되지 않은 일은 과감히 다른 팀에 위임했다.
임원이 되고 회사 전체를 봤다. 내가 “No” 라고 한 횟수만큼 회사는 보이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팀에 대한 극단적인 이기심은 회사 전체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 일을 거부 한다고 해서 그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 다른 어떤 팀에서 그 일을 처리 해야 한다. 내 팀이 쉬면 다른 팀에서 그 빈틈을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 불협 화음이 계속 된다면, 계속 희생하는 팀은 무너질 것이다. 회사는 그 팀과 함께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개인과 회사와의 관계도 그렇다. 워라벨이라고 일이 없어지는게 아니다. 내가 워라벨을 챙길 때 누군가는 그 땜빵을 하고 있는 거다. 서로 서로 빈자리를 메꾸지 않는다면 서서히 조직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회사가 망하면 개인의 워라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직생활은 칼빵을 맞을건지, 그 고통 만큼 일을 받아들일건지 선택하는 거다. 다른 묘수 같은 건 없다.
이제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Yes” 를 위한 “No” 를 사용한다. 상대를 위해 너무 많이 퍼주어서도, 또 나를 위해 너무 방어만 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