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가난한가: 2030을 위한 부의 새로운 공식
사내 게시판 관리도 해야 하고, 공지 글도 올려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나기만 해요. 그래서 연차도 제대로 못쓰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돈이 없어요. 저는 왜 이렇게 가난한가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서 저 같은 사람들에게 나눠 줬으면 좋겠어요.
어느 가난한 초년 직장 후배의 질투와 분노에 서린 울부짖음이었다. 이해한다. 사면초가다. 돈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티끌 같은 월급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월급에 비해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고 고통스럽다. 나만 빼고 다들 해외여행 간다.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하다. 왜 이렇게 세상은 불공평한가!.
아마 꼰대라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도로 마무리할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이 말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이 위로가 2030 후배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똑같이 가난하고 비루한 2030을 힘겹게 버텨온 선배로써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무책임한 말은 어쩐지 직무태만 같다. 나도 그때 누구보다 부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것도 당장!!.
나는 오랫동안 부에 대한 정의를 잘못 생각해 왔다. 2030이었던 내가 생각했던 부는 드라마틱한 장면전환이었다. 복권에 당첨되면 가난한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어느 날 뭔가 대박이 터져 내 통장에 100억이 딱! 꽂히면 암울한 나의 가난한 이야기는 끝나고 부자로 탈바꿈하는 장면전환인 줄 착각했다. 마치 가난하게 살던 내가 사실은 부잣집 숨겨진 아들이었다는 드라마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부의 개념을 시간의 흐름이 제거된 하나의 극적인 장면으로 생각했다. 내가 뛰어 넘어서야 할 장벽이라고 생각하니 절망스러웠다. 그 장벽을 넘어선 기득권들이 이미 다 차지한 것 만 같았다.
아마도 많은 2030 후배님들이 상상하는 부는 이런 급진적 변화 일 것이다. 그래서 초년 후배가 눈물을 훌쩍이며 프랑스 루이 16세의 단두대를 언급했을 것이다.
2030에게 이 사회가 주는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가혹하리 만큼 불평등한 상황도 사실이다. 하지만, 2030에게도 긍정적인 불변의 사실이 하나 더 있다. 2030을 짓누르고 있는, 탐욕스럽게 모든 걸 움켜쥐고 있는 기득권들도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그들의 선배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마찬가지다. 2030도 곧 3040이 된다. 그리고 4050이 될 것이다. 2030 후배의 소망처럼 부자를 단두대에 걸어 그 부 를 모두 2030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래서 부자가 되었다면 그다음 단두대에는 자신이 서야 한다.
부자가 죽는 날, 바로 그날 그 부가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해서 그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통장에 100억이 입금되었다고 해서 대리에서 임원으로 승진되지도 않는다. 어젯밤에 코인이 100배 상승했어도 오늘 출근한 당신은 여전히 복사를 해야 하고, 선배 대신 문서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써야 할 것이다. 복권에 1등 당첨이 되었다고 해서 사장님이 나에게 갑자기 중요한 회계장부를 맡기지도 않는다.
내 통장에 입금된 돈의 액수와 나의 부의 그릇의 크기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부자의 그릇은 경험이고 긴 시간 동안 돈을 잃지 않도록 하는 지혜의 산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통장에 꼽힌 100억이 나의 그릇을 한방에 키워주지 못한다.
진정한 부 란 나에게 기회가 올 때까지 고통을 견디며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2030이 4050이 될 때까지 경쟁자들이 고통에 못 이겨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버티다가,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준비되었는가 에 대한 해답인 것이다.
100억이 있으면 왜 회사에 출근하느냐고 딴지를 걸겠지만, 돈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그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내 주머니로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신뢰를 받았을 때에만 그는 나에게 돈을 준다. 능력이 신뢰이고, 그 능력이 모자라면 경력으로 채워야 한다. 경력이 모자라면 긴 시간 동안 노력으로 그것을 채운다. 긴 시간 동안 어떤 일이든 지속할 수 있다면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신뢰를 쌓으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신뢰가 돈을 벌 수 있게 한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후배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누구에게 돈을 썼는지 기억해 보자. 스마트폰 구독을 누르고,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사고,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는 모든 구매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천 원짜리 빵을 하나 사더라도 , 어디 제품인지 믿을만한 제품인지 스캔하지 않는가. 자신이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신뢰를 기반한 소비 행동이다. 신뢰가 없다면 그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전문가가 우리에게 신뢰를 주었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그에게 준 것 아닌가?
그래도 못 믿을 후배님들을 위해 내 경험을 공유하자면,,,
라때 타령을 하려는 게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가진 것 없고, 무능력했던 나의 2030은 기회가 없었다. 돈도 없었다. 지혜도 없었다. 그런 내가 외투법인 임원이 될 수 있었던 비밀은 시간이었다.
스텝이었던 나는 할 줄 아는 게 복사하는 것뿐이었다. 선배들의 눈치를 보면서 잔심부름만 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 있고 학벌 좋은 동료들은 고객과 중요한 계약미팅에도 나가고, 출장도 많이 나갔다. 나는 언제나 사무실에 남아 문서를 정리하고 퇴근할 때 출입문 시건장치를 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은 계속 늘어만 갔다. 단순히 복사하고 서류 정리하는 업무 하던 나에게 그 문서 자체를 만들어야 하는 기회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묵묵히 그 일을 해냈다. 내 업무는 밖에 나가 있는 능력 있는 선배들을 위해 급여를 전달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들에게 급여를 얼마를 주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었다. 모자란 내가 그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훌륭한 대학을 나와서도 아니다. 그냥 운이었다. 그 시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기다리다가 우연히 만난 행운이었다. 나에게 기회가 왔고 나는 그 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것으로 나는 회사에 신뢰를 얻었다.
나는 무능력자로써, 내가 할 수 있는 365일 회사에 존재하는 업무를 썩 잘 해냈다. 일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파리를 잡을 때도 나는 열심히 출근했다. 회사가 어려워 직원에게 급여를 주지 못해도 나는 회사에 출근했다. 나는 시간이란 것을 회사에 투입했다. 회사는 나에게 그 대가로 신뢰를 주었다. 시간이라는 증거는 그 누구도 의심하거나, 토를 달지 못한다.
신뢰를 얻었다고 해서 별반 바뀌는 것은 없었다. 당장 급여가 올라가는 것도, 보너스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상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주변에 이미 와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이벤트가 아니다. 부는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에서 1등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처럼 우리의 삶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1만 원을 벌기 위해 밤을 새워도 당신의 삶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1억 원을 벌어도 달라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하기 싫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아주 긴 시간 동안 견뎌내다 보면 내가 모르는 사이 부는 찾아온다. 사실 부가 나에게 이미 와 있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부가 자신의 고통에 비하면 언제나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큰 부자라고 해도 스스로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겸손해서가 아니다. 부는 긴 시간 동안 누구도 감당하지 못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러 들어오는 아주 작은 보상이기 때문이다.
2030 후배님, 너무 절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불평등은 기회의 다른 모양이다. 거꾸로 만일 이 세상이 완벽하게 평등하다면, 그대가 그렇게 바라는 부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완벽한 부의 평등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부의 평등이 이루어진다면, 그 누구도 가난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