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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직장의신2 05화

고인 물들의 법칙: 살아남은 자만이 진실을 말한다

왜 연합은 당신의 칼이자 족쇄가 될 수밖에 없는가?

by 한금택

직장 밖에서는 직장생활 피비린내 난다는 말을 배부른 푸념쯤으로 듣는다. 매달 꼬박꼬박 받는 급여만을 생각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정해진 일과, 정해진 시간 동안 회사에 있으면 된다. 돈벌이로 치면 어쩌면 난이도가 낮은 생산 수단일 수 있다.

조직 안에 사람이 있다. 몇몇 사람이 모이면 하나의 단체가 된다. 사람에 따라 급여와 보상이 다르다.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상대가 진급하면 나는 누락된다. 엄연히 약육강식의 사회다. 친구도 아군도 없다. 경쟁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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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은 아직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다. 신입사원이 처음 입사하면 부서 선배들 이름과 직급, 업무를 외운다. 적군과 아군을 식별하기 위해서다.

“A 선배는 일은 잘하지만 성격이 개판이고, B선배는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다” 선배들이 직장생활에 당장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깨알같이 알려준다. 각 인물 별 직급과 성격, 그들의 개인적인 부분까지 모두 공유된다. 이런 정보는 어디에 적혀 있지 않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눈치 빠른 신입들은 그 입들이 모여 있는 비공식적인 연합의 존재를 알아내고 소리 없이 그 속에 녹아든다. 그 연합은 형체가 없다. 하지만 스텝부터 대리, 과장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낮은 직급의 직원들이 친목으로 맺어진다. 고만 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술도 마시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면서 비공식 조직인 연합이 운영된다. 이 연합의 미션은 하나다. 연합의 반대파를 정하고 그들을 은연중 까 내리고, 공격하는 것이다. 아직 어리고 힘없는 직원들은 본능으로 안다. 이 연합에 들어가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중역 미만의 직원들은 본인 스스로를 조직 안에서 지키기 어렵다. 그래서 군집을 이룰 수밖에 없다. 군집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는 적을 만들고, 함께 그 적의 반대 편에 있음을 확인하며 전우애를 다지고 , 적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살벌하게 먹고 먹히는 전쟁이 계속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표시 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을 암암리에 하지 못하거나, 표시 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직장인 적성이 아니다. 은밀하게 같은 연합의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사무용품 가지러 가는 복도에서 잠깐의 눈빛을 주고받는 것이 전부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분위기로 서로서로 알아채고 정보를 교환한다. 희생양은 누가 무엇을 언제 그런 일들이 행해지는지 모른다. 그냥 조직의 상황이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같은 연합에 속한 가입자들은 희생양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고향이 어디이고, 언제 결혼했으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상대의 약점과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무한 반복 재생산한다.

희생양은 마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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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약한 직원들에게 연합은 좋은 안식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연합도 치명적인 위험이 있다. 연합에서 밀려나면 언제든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연합의 본질적인 에너지가 마녀를 만들고 그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그 마녀가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다. 그 연합 안에서 잠시 등을 돌리는 순간 남아 있는 자들로부터 칼빵을 맞을 수 있다.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연합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부당한 일들도 감수하고, 그 안에서의 자신이 아군임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엉뚱한 마녀를 만들고 앞서 공격한다. 자신의 약함을 보호하기 위해 연합을 이용하지만, 연합에 있는 동안엔 누군가의 등에 칼을 꽂아 넣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연합의 태생적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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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조직에서 힘과 커리어를 쌓았다면 연합에서 나와야 한다. 연합의 조건이 약자들의 모임이고, 그 약자들이 서로를 보호하자는 것이 목표다. 본인이 조직에서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췄다면 연합에 있을 수도, 있을 이유도 없다.


연합에서 나오는 순간 즉시 마녀 당사자가 된다. 이제는 서로서로 돕던 동기가 적이 된다. 연합에서 나왔다는 것은 누군가를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이고,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연합에 있는 친구들은 내 등에 칼을 찌를 것이다. 한때 친했던 사람들, 서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들로부터 가장 예리한 공격을 받았을 때의 배신감과 분노는 견디기 쉽지 않다. 이 고통을 견딘 사람들이 조직의 피라미드 상단까지 오른다.

퇴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피라미드의 문턱에서 돌아섰다.

“차라리 굶고 말지 , 내가 굳이 이런 것까지 참고해야 하나?”.

누군가의 귀한 아들딸로 자랐으며, 가정에 돌아가면 한 아이의 아빠이고, 가장이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떠받치는 신념과 철학이 있다. 직장밖에서는 알아주지 도 않는 부장이니, 임원이니 하는 허망한 위치 때문에 스스로를 부정해야 한다면 고민이 많이 될 것이다. 직장생활이 단순히 돈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본질까지 건드리는 상황을 참아내지 못한다.

“돈 때문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다들 퇴사는 스스로 한다. 밀려나고 쫓겨나고 그런 일들은 많지 않다. 동료들의 숨겨진 눈빛과 압박감에 스스로 견디지 못한다.

견디기 힘든 감정은 배신감이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삶 전체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극도의 복수심과 함께 밀려오는 자괴감. 본인 스스로의 멍청함을 인정해야 할 때 사람들은 모든 걸 포기한다.

자신을 향한 말도 안 되는 소문과 마녀주술이 태풍처럼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원인도 발원지도 없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런 질시와 소문들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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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뚫고 버티고 견디는 고위급들을 우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고인 물이라고 한다.

버틸 수 있다면 언젠가는 사그라 들고 만다. 시간이라는 발효약이 피 흘리는 마녀에서 먼 옛날 전설이야기로 승화된다.

지금 자기 방을 가지고 업무시간에 멍 때리는 부장님이 있다면 그는 한때 마녀로, 악마로, 천하여 멍청이로 불렸을 확률이 높다. 그는 동료들이 본인을 악마라 부르도록 허용한 사람들이다. 혼자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고독의 무게를 매일 견디며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밖에서는 직장인을 노예라 부르기도 하며 비웃는다. 하지만 노예라고 불려지기를 허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만이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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