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아버지
당시 당신은 아버님과 어머님 댁에 같이 살고 있었지.
그리고 나는 우리만의 집을 따로 얻겠다고 하지 않고
그곳으로 들어가서 살겠다고 말했지.
그것도 아주 선뜻-
그때 내 곁엔 나보다 더 빨리 결혼한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나를 극구 말렸어 시댁 들어가서 사는 거 쉬운 거 아니라고 분명 후회할 거라며 말이야-
하지만 그땐 귀담아듣지 않았고 그 말이 들리지도 않았어
믿는 구석이 있었고 그래서 괜찮을 거라 생각 들었거든
그 구석에는 너무 좋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셨으니까-
그리고 이건 지금도 앞으로도 비밀인데 사실 난,
어머님보다 아버님이 더 좋아서 그런 결정을 했던 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아빠의 빈자리를 깊게 느끼는 사람이었잖아. 근데 당신네 집 놀러 갈 때면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자상한 아버님의 모습이 많이 보기 좋았거든
그러면서 저런 사람이 내 아빠였다면..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었어
그래서 난 친구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빠르게 당신네 본가로 들어간 거야.
당시 아버님이 일하시다 다치신 상황이라 어머님이랑 당신만 출근하는 상황이었고 아버님과 나, 둘이 있다가 아들이 태어나고 나선 셋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는 그 시간조차 좋았어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이런 내 마음과 아버님의 마음이 통했는지.
하루는 나의 집. 즉, 친정을 가는 날이었어.
아들을 낳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가는 거였거든? 아주 떨렸지
친정집을 가는데 왜 떨리냐고? 알잖아,
새아빠랑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거, 거의 안 보고 살았던 거
아버님은 그런 내 상황을 다 아시니 차로 친정집을 데려다
주셨고 도착 후 차에서 내리는 나를 따라 내리셨어-
그러곤 바지 주머니에게 지갑을 꺼내셨고 오만 원짜리 두장을 건네시며 말씀하셨어. 기죽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아버지한테 전화해-
그 말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아버님은 그렇게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어..
오만 원짜리 두장 손에 꽉 부여잡고 벨을 꾹 누르는데
정말 생각보다 떨리지 않고 용기가 나더라?!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마음에 생겨났나 봐 너무 감사했지
근데 이런 아버지에게 내가 못할 짓을 해버렸지
순서를 몰랐고 방법을 몰랐어 그냥 너무 어리석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