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우울의 늪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빠져나오기 힘든 우울늪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아무런 징조 없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차고 넘치는 충분한 이유들이 많았다는 것을 조금 극복한 이제야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땐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설사,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찾으려고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리는 상태였고 마음속 큰 상실감과 무력감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큰 무기력함만을 느끼던 시기라 어떻게 했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나의 마음 소통 창구이자 나의 감정 해소 창구인 글쓰기조차 아예 손을 놓고 쳐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게 병든 마음을 낮에 일을 하면서는 더더욱 절대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의 압박감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빠르게 썩어 들어갔고 그럴수록 저녁,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져갔다.
분명 초반엔 정신적으로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하며 이겨내며 버텨내던 감정 상태였는데 다음날은 술이 동반되고 그다음 날부터는 우울함과 불안함에 눈물이 멈추지 않고 그 후부턴 내가 내가 아닌 거 같고 술에 의존하며 모든 상황 속 분노를 느끼며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보이고 말았다.
그러니 전혀 그럴 이유가 없던 남편과도 당연스럽게 사이가 틀어져갔고 모든 상황과 관계들이 최악으로 흘러가면서 또다시 나는 모든 것에 대한 끝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10년 만의 든 생각이었다
감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감사한 일들이 생긴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의식적으로라도 긍정적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에게 왜 유독 답도 없고 불행하고 부정적인 일들만 일어나는지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하니 차라리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요즘.
그렇게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품은 나에게, 슬픔을 품은 나를 비춘 눈동자와 상처받은 얼굴로 나의 말에 상처받았다며 강하지만 여리게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제야 너무나도 감사한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소중한 존재의 가족들이 내 옆을 지켜주고 있음을 깊이 느끼며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나의 잘못을 무조건적으로 이해만 받고 싶지 않았기에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담지 않은 채 그 모든 것은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닌 온전히 나만의 문제임을 고백했고 그래서 혼자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 마음이 너무 복잡했고 아무리 해결해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삐뚤게 마음을 내비쳤던 것이라고 절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상처를 주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을 담아 사과를 표현했다
언제나 그렇듯 남편은 나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자 그토록 불안했던 마음속 평온함이 감돌았다.
용서를 받았다는 것에도 그랬겠지만 이렇게 불행한 인생 속에서도 나를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어떤 모습이든 나와 함께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더는 우울하지만은 않을 거 같아서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만은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