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정!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
아우, 저 허당!
그러면서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놀림을 더한하는 이럴 땐 남의 편인 거 같은 내 남편!
처음에 그 놀림에 아주 발끈하며 얼굴이 시뻘게지며 흥분하여 아니라고 맞받아치기 일쑤였는데 하루하루 세상에 대한 내공이 쌓여가면서 허당인 나의 모습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고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허당, 그것은 별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다. 나는 아주 허당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쪽 세계와는 멀리, 그거도 아주 멀리 동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냥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도 꼭 두 번 세 번 하게 만들고 어떤 물건을 들고 오다가도 한 번씩 꼭 떨어뜨려야 하며
상대방이 가리키며 저쪽에 있다며 찾으라는 물건이 바로 앞에 있어도 왜 내 눈엔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설거지를 해도 꼭 밑에 거품이 묻어있어 다시 한번 손을 대야 하는 번거로움을 통해야 하는 그런 허당 중 아주 허당-
남편에게 발끈하던 그 순간은 나도 내가 허당인 것을 느끼면서도 싫었기에 그 부분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 나의 자격지심이 한가득 들어간 마음을 바꾸고 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인정하고 나면 무시당할 수 있고 내가 못한다고 손가락질받으면서 내가 우스워질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번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같은 분야로 옮기긴 했지만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일들은 나에게 적지 않게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그 결과 자려고 누워 눈을 감아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생각들과 상황들로 밤새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고 생각하지 않고자 애쓰며 운 좋게 잠에 들어도 별별 사람들이 다 나와 밤새 수많은 상황들이 만들어지며 모든 순간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꿈을 꾸었다
밤낮으로 너무 괴로웠고 그 속에서 또다시 당하는 서러움에 입술 깨물며 눈물 삼키고 집으로 돌아와 울부짖는 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면서 내 안에서 문제를 찾기보단 그곳이 이상하다고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고 고래고래 외쳐댔다
아무 죄 없는 남편은 나의 분노를 직격타로 맞으면서도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었고 그런 이해의 위로는 내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며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겁나고, 잘 몰라서 잘 못할 거 같을지라도
절대 어느 순간에서도 잔머리 쓰지 말고 무조건 부딪쳐보고 도전하고 감당하자고-
한소리 두소리 듣는 그것이 싫고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내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까 하는 두려움을 계속 느끼고 있다면 방법은 딱 하나!
그 모든 것 다 할 수 있는 스스로 능력을 키우면 된다는 아주 절실한 타이밍에 느낀 깨달음이었다
그 후로 나는 절대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상황이 아닐지라도 도와주며 어떻게든 계속해서 해보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릴지라도 결국은 해결했으며 그 어려움이 끝난 후엔 나의 능력이 향상 됐다는 뿌듯함에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그러다 며칠 전 다시, 남편은 집에서 무언가를 어설프게 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진짜 허당이야, 일 하는 게 어떨지 보인다-
그 말에 씩 미소를 한번 지은 뒤 나는 이전처럼 흥분하지도 얼굴이 시뻘게지지도 않고 아주 차분하지만 아주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맞아, 나 허당이야. 그래서 할 수 있는 별별 웃기고 어이없는 실수들도 많이 하는데 나는 그렇게 실수하고 나서 한번 배우고 나면 다신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아. 그렇게 하나하나 다 내 것으로 만들면서 내 능력을 쌓아가고 있어-
예상치 못한 나의 대답을 들은 남편은
그래, 그 말이 맞네라고 작게 읊조렸다.
인정하고 나니 편하기까지 한 허당인 내가 더 이상 싫지 않다
조금씩 어설프고 무엇이든 한 번에 해내는 뛰어난 사람은 아닐지라도 실수라는 경험을 통해 더욱 깊이 알아가고 배우려고 하며 그 경험치를 통해 스스로의 능력치를 키우는 사람,
어느 순간일지라도 절대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맞서 경험하며 깨우치는 허당인 내가 꽤 괜찮다고 느껴진다.
허당이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