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니 벌써 예순을 훌쩍 넘었다. 중년이라 부르기엔 양심에 걸리고, 노년이라 하기엔 아직 억울한 감이 있다. 그래도 노년의 문턱에 한 발을 걸쳤으니, 노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쉰 무렵, 누군가 말했다. “신나는 노년은 없어.”라고. 그때는 사실,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노년이 신나지 않다는 거야?’
나에게 노년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시기라 여겨졌다. 시간, 일, 살림에 매이지 않는 삶, 그것이야말로 신나는 일상이 아닌가. 그 시절의 나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에 위로를 받으며, 퇴직 후의 자유로운 일상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퇴 후 일터에서 멀어지자, 일상의 리듬도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서의 의미 또한 희미해졌고, 머리 아픈 민원과 책임의 무게도 극심한 공허함이 대신했다. 많은 이들이 은퇴 이후를 보상의 시간이라 여긴다. 오랜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 느긋한 나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기.
고대했지만 막상 그 시기가 되고 보니 신남보다 쓸쓸함이 먼저 찾아왔다. 무한히 주어진 목적 없는 자유는 무료했다. 나이 쉰에 들었던 ‘신나는 노년은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와닿았다. 정말 신나는 노년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은퇴 후 1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TV에서 91세의 이순재 씨를 보았다. 영어와 독일어로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리어왕]의 대사를 완벽히 소화하며 무대 위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모습이었다.
그는 "성실이 재능을 이긴다." 라고 말한다.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대본을 연구하며 기본기를 다지는 성실함이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요즘 일본의 시니어들 사이에서는 일상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 방식이 유행이라고 한다. 취미활동, 봉사활동, 약간의 수익 활동을 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와 리듬을 동시에 유지하는 최소한의 구조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유용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을 안고, 나의 노년을 의미 있게 보낼 방법을 고민했다. 나는 무엇으로 나의 남은 시간을 채울까. 조금 더 신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문득,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다. ‘헤어 디자이너.’
미용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요양원 어르신들께 봉사하고, 가족이나 친구의 머리도 손질해 줄 수 있다. 그들이 나에게 머리를 맡길지는 의문이지만, 보람과 신남, 약간의 수입,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괴테는 “인간은 젊은 시절에 원하던 것을 노년기에 실컷 누린다.”라고 말했다.
요즘 나는 글쓰기, 운동, 여행, 골프, 이색 도서관과 맛집 탐방, 미술관 관람, 자유로운 시간 누리기, 카페에서 책읽기, 멍때리기 등 다양한 일들에 몰입하며 살아간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젊은 시절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들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지금이 진짜 신나는 노년일 것이다.
신나는 노년은 있다. 다만 저절로 오지 않을 뿐이다. 의미 있는 하루를 스스로 찾아 실천할 때, 비로소 신나는 노년이 열린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 노년은 끝이 아니라 신나는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