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길을 잃은 청춘의 인생 나침반

by 아남 카라

사람들은 종종 청춘을 장밋빛 추억으로만 간직하려 한다. 과거의 아픔과 실패는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고, 달콤한 기억들만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본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과거의 청춘이 온전히 아름답기만 했을까?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고통과 시행착오, 그리고 불완전함이 뒤섞인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의 청춘은 장밋빛이라기보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낸 음울하고 무거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방어용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 억눌린 시간들은 고등학교 2학년에 이르러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나만의 환상여행,’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5년간의 ‘자기 억압,’ 그리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타인을 위한 삶’이 하나로 얽히며 나는 결국 ‘신경쇠약’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무렵부터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에 몰입하지 못하면서 불안감은 점점 커졌고, 공부에 대한 강박은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 심장이 요동치고, 학교 수업은 물론 일상까지 흔들리며 나는 점점 고립되었다. 아버지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 상태가 심각해진 후에야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진단은 노이로제성 신경쇠약이었다. 암흑 같던 주변 환경은 나를 잠식했고, 나는 스스로를 암흑으로 만들어버렸다.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고등학교 2년을 나는 신경안정제의 몽롱함 속에서 날려 보냈다. 그리고 잿빛 청춘을 맞으며 좌절했다. 세상은 원망스러웠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세상을 제대로 한 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날개가 꺾여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슴속 먹먹함은 소리 없는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잿빛 세상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신경쇠약이 내 인생을 앗아가는 것 갔았다. 집중력과 순발력, 그토록 믿어왔던 강점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평생을 안간힘을 쓰며 살아야 했다. 잃어버린 순발력과 집중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실함과 꾸준함뿐이었다. 그로부터 40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신경쇠약은 내게 목표를 향한 속도보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를 가르쳐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살 길을 찾았지만, 그 이면에는 꺾인 날개로 바닥을 기던 청춘의 불안과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르기 전에 날개가 꺾여 추락하던 좌절은 내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시 예전처럼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매일 맞서야 했지만, 그럴수록 지칠 줄 모르는 근성이 가슴속에서 불타올랐다. 간혹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선뜻 손을 들지 않을 것이다. 날개가 꺾인 채 짊어져야 했던 청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 말이다.


요즘 청춘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우리가 겪었던 시대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냉혹하다. 젊음을 상징하는 열정과 자유를 누릴 여유도 없이, 청춘들은 끝없는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사회의 높은 벽은 그들의 꿈은 물론 인간관계와 정서적 안정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 잘될 거야"라는 말은 공허한 위로로만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들 곁에 서서 말없이 응원하고 싶다. 청춘의 고단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아픔을 굳이 말로 위로하려 하기보다 묵묵히 지켜보고 싶다. 다만, “자네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말은 꼭 전해주고 싶다. 어릴 적 나 역시 고통을 오롯이 나만의 몫이라 여겼고, 그 생각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법을 배웠다.


신경쇠약은 나의 강점이었던 집중력과 순발력을 앗아갔지만, 그 상실감은 새로운 나침반을 선물했다. 성실함과 꾸준함이 그 빈자리를 채웠고, 방향감각을 잃은 나에게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나 자신을 세우며 살아갈 길을 찾았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누구나 내면 깊숙이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 공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각자가 짊어진 짐의 모양과 무게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그 짐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 기대며 나아갈 때, 청춘은 더 단단하고 빛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또 하나의 조언이 있다. 기성세대와 경쟁하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쌓아온 것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그들의 길은 그들만의 것이고, 지금의 청춘들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기성세대는 이미 뒤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청춘은 자신의 세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며, 미래의 주역이 될 순간을 차분히 준비하면 된다.



청춘이 나침반으로 삼아야 할 미덕 중 하나는 바로 ‘잡초 같은 강인함’이다. 내 자식에게 단 하나의 미덕을 물려주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이 거친 야생성을 선택할 것이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강한 마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산이다.


이 강인함은 현재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거친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자라난 잡초의 생명력을 따라갈 수 없다. 청춘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며, 결국 승자는 모든 역경을 견뎌 낸 사람이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 꿈을 붙잡기 위해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청춘에게 성과와 성공만을 좇지 말라는 말도 전하고 싶다. 인생은 실패와 실수를 통해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시행착오는 단지 넘어짐이 아니라, 삶의 나침반을 세워가는 과정이다. 청춘의 고독과 좌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성숙해진다. 지금 당장은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스스로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저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어떤 이에게는 가슴 벅찬 꿈과 희망의 시기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고통과 방황으로 점철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여정을 걷든, 그 길 위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찾고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존중하고 믿는 마음이야말로 청춘을 이끄는 진정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