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는 흔히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불태우고 낭만을 즐기라고 당부한다. 왜 그토록 한목소리로 열정과 낭만을 강조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세월이 흐르고 뒤돌아보았을 때, 그들 자신에게 가장 결핍되었고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이 바로 그 열정과 낭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열정을 불사르며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는 그들의 바람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성세대가 젊었던 시절은 과연 어땠을까? 그들의 청춘 역시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던 시절. 끝없는 불안이 마음을 흔들고, 그 누구도 이 고통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은 고독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의 성취를 이루고 기성세대가 된 지금,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 지독한 불안과 고독은 어느새 망각한 채, 청춘의 열정만을 찬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기성세대를 다시 청춘으로 돌려놓는다면 어떨까? 그들이 젊은 세대에게 설파하던 열정과 낭만을 과연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 지금의 불확실하고 치열한 환경 속에서라면 그들 역시 불안과 고독에 짓눌리며 다시 방황하지 않을까. 결국, 그들이 바라는 열정과 낭만은 과거의 그리움일 뿐, 청춘에게 강요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닐 것이다.
열정과 낭만은 나이에 국한된 감정이 아니다. 진정한 열정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과의 내면적 싸움에서 싹튼다. 내 이익을 내려놓고 이타적인 마음을 품을 때, 그 열정은 신의 선물처럼 다가온다. 마음을 비운 그 자리에 자연은 스스로 낭만을 들여놓는다. 그때 비로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낭만 그 자체가 된다.
열정은 청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어느 시기에서든 새롭게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특히 기성세대에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타인을 위한 열매를 맺는 성숙한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열정과 낭만을 청춘들에게 요구하며, 마치 스스로는 이미 그 경지에 도달한 양 젊은 세대를 바라본다.
어쩌면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이나 낭만이 아니라 불안과 고독일지도 모른다. 청춘은 마치 명검을 단련하는 시기와도 같다. 고대 신화 속 페르세우스가 신들에게 받은 명검 하르페로 메두사를 처단하고 안드로메다를 구출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청춘의 불안과 고독 속에서 인생의 여정을 함께할 명검을 만들어야 한다. 이 명검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없이 반복되는 연단과 담금질의 과정이 필요하며, 그 고된 여정 속에서 진정한 열정과 낭만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청춘의 불안과 고독은 인생 모험을 위해 자신만의 무기를 다듬는 과정이다. 불안은 더 나은 준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들고, 고독은 내면을 단단히 세워 자립심을 키운다. 오늘의 기성세대 역시 이 연단을 거치며 형성되었다.
열정과 낭만을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청춘의 불안과 고독을 신의 선물로 받아들이자. 불안과 고독을 밑천 삼아 자신만의 명검을 갈고닦을 때, 비로소 삶의 모험 속에서 각자의 서사가 시작된다. 페르세우스가 하르페를 휘둘러 메두사를 처단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써 내려갔던 것처럼, 우리 역시 불안과 고독을 통해 자신만의 무기를 완성해야 한다.
다만, 신의 선물도 지나치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불안과 고독이 적정선을 넘어서면 불안증이나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를 적절히 관리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도한 불안을 줄이고 고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안은 주로 경쟁적 성향이 강하거나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타인과의 경쟁 대신 자신과의 경쟁으로 방향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니체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조금씩 성장하다 보면, 타인과의 경쟁에서 비롯된 불안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자신 안에서 느끼는 꾸준한 성장은 그 자체로 커다란 성취가 된다.
고독 또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다. 책을 통해 우리는 홀로 있는 순간에도 저자 대화하고 지혜를 나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만나 철학을 논하고 알렉산더 대왕과 원대한 꿈을 나룰 수 있다. 예수와 부처, 노자를 통해 영적 이치를 깨닫고, 융과 함께 무의식을 탐험하는 여정에 나설 수도 있다.
불안과 고독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아니라, 인생의 명검을 완성하기 위한 귀한 재료다. 신이 준 불안과 고독이란 선물을 잘 다루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길 줄 아는 삶을 살아가자. 그것이야말로 자신만의 인생 서사를 온전히 완성하는 길이다.